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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메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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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후원자로 흔히 메디치가(家)를 꼽는다. 실제로 갈릴레오.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의 쟁쟁한 거장들과 인류사를 빛내는 수많은 당대의 작품은 메디치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탄생이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그러나 최고의 호사귀족 가문으로 알려진 메디치가의 문장(紋章)은 의외로 여섯개의 둥근 알약이 그려진 단순하고도 소박한 모습이다.

여기서 둥근 알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지 않다. 일부에서는 '후추'라고도 하고, 당시의 환전상이 이용했던 '저울의 추'라고도 한다. 메디치가의 본업이 금융업이었던 것을 감안한 해석인 셈이다.

메디치가는 한때 교황청의 재산관리를 맡았을 정도로 최고의 신용과 금융기법을 겸비한 은행그룹이었다. 유럽 각지에 16개의 은행을 보유했고 막강한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요 도시의 정보와 자금의 흐름을 손바닥 읽듯 파악했다. 이런 힘으로 그들은 두 명의 교황과 두 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했다.

이런 메디치가에 과학자.예술가들은 여러 방법으로 보답을 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갈릴레오의 보은이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목성 주위의 네 위성을 '메디치의 별'이라 명명하고 이를 메디치 가문에 헌정했다.

이런 메디치가에도 곤혹스러운 유전병이 있었다. 바로 근시였다. 메디치가에 의탁하던 과학자들은 시력에 도움을 주고자 많은 보정구(補正具)를 만들거나 개량을 했다.

그중 하나가 안경이다. 오늘날의 안경이 1280년께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것이나 14세기 이후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화려하고도 호사스러운 안경산업이 발달한 데에는 메디치가의 이런 근시력(歷)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메디치가는 1743년 안나 마리아 루이사가 후손없이 75세로 숨을 거두면서 3백년에 이르는 가문의 역사가 끝이 났다. 그녀는 메디치가의 막대한 유산을 피렌체 시민의 것으로 남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피렌체의 화려함과 풍부한 문화유산은 이렇게 유언으로까지 이어진 메디치가의 후원정신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세계의 관광객을 경탄시키고 있다.

남산 이전 3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이 한국의 메디치를 찾고 있다. 다른 나라.지역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경탄만 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 재능을 가진 우리 예술가들에게 우리 스스로 소(小)메디치가 되어 세계에 자랑할 한국 문화 부흥의 디딤돌이 되어보자.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