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editor's letter] 사투리의 사회학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78호 04면

조선 영조시대 벼슬아치 유의양은 당쟁에 휘말려 1771년에는 경남 남해도로, 1773년에는 함북 종성으로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했으니, 바로 유배지의 산천과 풍속, 문물과 언어를 적은 한글 필사본 『남해문견록』(1771)과 『북관노정록』(1773)을 남긴 것이죠. 병아리를 남해에서는 비가리, 종성에서는 방우리라 부른다죠. 옥수수는 강남슈슈(남해)와 옥숙기(종성)라 한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근대화 시기에 민족계몽을 위해 만들어진 황성신문 1900년 10월 9일자에는 8도 말투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실려있습니다. “경기도 말씨는 새초롬하고, 강원도 말씨는 순박하며, 경상도 말씨는 씩씩하다. 그리고 충청도 말씨는 정중하며, 전라도 말씨는 맛깔스럽다. 황해도 말씨는 재치있고, 평안도 말씨는 강인하며, 함경도 말씨는 묵직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번 주 발간된 신간 『방언의 발견』에서 저자인 정승철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표준어든 사투리든 자신이 원하는 말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 곧 ‘방언 사용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지금이라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역색을 담은 방언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지금, 그 속도라도 늦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네요. “말을 잃으면 고향을 잊는다”면서요.

남북에 ‘봄이 온다’는 요즘, 평안도와 함경도 사투리의 차이점에 대해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