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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키우는 것의 8할은 가족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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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29면

김정기의 소통카페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불청객 꽃가루 알레르기가 또 방문했다. 꽃기운이 대지에 퍼지는 봄의 입구와 가을 추수기면 해마다 겪는 성가신 손님이다. 바닷가 모래알 보다 많은 우주의 별 중에서 ‘창백한 한 푸른 점’(『코스모스』, 칼 세이건)일 뿐인 지구라는 행성에서 찰나 같은 짧은 시간을 사는 동물인 필자에게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알레르기가 신기하다. 때가 되면  떠나는 건 오묘할 정도다. 알레르기가 시작되면 나는 한 숟가락 더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아버님이 “몸이 아프면 오히려 더 많이 먹고 힘을 내야 한다”는 말씀 때문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겠지만 목이 잠기도록 밥을 삼키던 정경이 떠올라 미소 짓는다. 자기를 키운 것의 8할이 바람이던 시인의 말을 빌리면 ‘사람을 키운 것의 8할은 가족’이다.

인간이 물건을 고르듯이 가족을 선택하여 태어날 수는 없다. 가족의 역사, 친지, 환경 등 내외적 관계는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최소한 두 사람 이상으로 구성된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제도로 공동의 공간, 공동의 역사를 공유하고 감정적 유대감을 공유하는 결합체다. 사회와 인간의 변화로 전통적 가족공동체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특히 가족 간의 범죄는 참담한 지경이다. 자신의 침대를 설치해준 아버지와 누나를 살해한 청년. 배우자 간의 폭력과 살인, 어린이와 노인학대와 같은 파렴치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세상을 막을 방도는 없다는 비관이 팽배하다.

그러나 가족을 혈연과 위계질서 중심의 비공개적 닫힌 시스템으로 보는 전통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족 사이의 소통을 복원해 간다면 근본적인 치유를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족은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작용이란 소통을 통해 건강한 관계를 함께 형성하는 공동체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가족공동체에 대한 실태조사(5018가구 대상)에 따르면 가족 간의 대화 시간은 매우 빈약하다. 2017년 만 9~24세 자녀들의 평일 방과후 활동에서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기’는 2.7%로 12개 조사대상 활동 중에서 8번째다. 학원이나 과외(31.8%), 텔레비전, 비디오 시청(16.4%)과 같은 상위 활동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하다(‘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기’라는 복수 개념으로 설문해 가족과 대화의 정도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부부 사이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2015년)은 1시간미만이 65.4%이다.

미국의 연구 결과는 오랫동안 소통의 능력과 기술이 부족하면 인격모독, 능력 무시. 괴롭힘, 조소, 저주, 악담, 비방, 외모 비하와 같은 막말 언어공격행위가 가족과 배우자를 학대하고 물리적인 폭력행위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간의 소통 경험은 일생동안 영향력을 지니고, 세대와 세대로 전달된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세계 못지않게 평화로운 가족공동체를 위해 체계적인 공을 들여야 하는 까닭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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