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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볼 치고 노래 부르러 가는 병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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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일 부산진구 온종합병원 병원학교에서 이유진 봉사단장(왼쪽 사진 오른쪽)이 환우와 포켓볼을 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3일 부산진구 온종합병원 병원학교에서 이유진 봉사단장(왼쪽 사진 오른쪽)이 환우와 포켓볼을 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병원에서 포켓볼 치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좋습니다. 스트레스가 풀려 몸이 한결 나아진 기분입니다. ”

부산 온종합병원 ‘안전교육 학교’ #그린맘 봉사단이 개설한 교육시설 #탁구대·동전노래방·북카페 설치 #환자·보호자에 지역 주민도 찾아 #공부방 운영하고 음악회도 열기로

대상포진에 걸려 지난달 28일 부산 온종합병원에 입원한 김나영(25)씨는 병원 11층에 있는 병원학교(면적 300㎡)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는 “포켓볼을 치면 살짝 땀이 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다른 환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이례적으로 병원에 포켓볼과 탁구대, 동전 노래방, 인형 뽑기 시설 등이 들어섰다. 한쪽에는 책 1500여권이 비치된 북카페가 있고 차도 마실 수 있다. 봉사단체인 ‘그린닥터스 그린맘 봉사단’이 지난달 27일 안전 교육을 위해 개설한 병원학교 덕분이다.

녹색 어머니회에서 활동하던 학부모를 중심으로 60여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이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사소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큰 상처를 입는 걸 예방하려는 취지에서 설립한 학교다. 봉사단이 교육장을 찾던 중 온종합병원 그룹 정근(59)회장이 학부모의 뜻을 알고는 선뜻 병원 일부 공간을 내놓았고, 포켓볼·탁구대 같은 시설까지 마련해줬다.

3일 부산진구 온종합병원 병원학교에서 이유진 봉사단장(오른쪽 사진 맨 왼쪽)이 환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3일 부산진구 온종합병원 병원학교에서 이유진 봉사단장(오른쪽 사진 맨 왼쪽)이 환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 병원학교는 초·중·고생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주 1회 1시간 30분 동안 생활·교통·승강기 안전교육과 학교폭력 근절, 자살예방, 응급처치 교육 등을 한다. 안전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봉사단원이 직접 강의한다. 강의에 필요한 테이블과 의자 등을 갖췄다.

장기 입원한 초등생 등에게 교과 과정을 가르치는 다른 병원학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론 평상시에는 환자와 보호자, 지역 주민이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유진(48) 봉사단장은 “녹색 어머니회는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더는 활동할 수 없다”며 “안전교육의 필요성을 체감한 녹색어머니회원들이 안전교육 봉사를 이어가고자 시설을 갖추고 학교를 설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17년 경력의 베테랑 봉사자다. 2001년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했고 2009년 부산 녹색 어머니 연합회장을 맡아 교통안전 캠페인 등을 벌여 2010년 봉사부문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는 “안전교육을 받았으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며 “안전교육은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횡단보도 건널 때 조심하라’는 식이 아닌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는 안전벨트와 같다’ ‘횡단보도에서 차만 보지 말고 운전자와 눈을 마주친 뒤 건너라’ ‘축구공을 갖고 갈 때는 가방에 넣어라’와 같은 교육을 하는 이유다.

봉사단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논술과 그림, 영어 듣기, 진로상담을 하는 공부방과 뜨개질·악기를 배우는 취미교실도 운영할 계획이다. 한 달에 한 번 음악회도 연다. 동전노래방과 커피 자판기, 인형 뽑기 시설에서 나온 수익금은 모두 안전교육 교재제작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학교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 단장은 “병원학교가 문을 연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하루 40~50명이 찾고 있다”며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역 주민과 환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학교를 가꾸겠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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