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이래도 되는가"-민병관<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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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목·망치·곡괭이 등을 든 학생들의 거친 손길에 책상과 의자·유리창이 부서진 뒤 창밖 10여m 아래로 내던져졌다.
『이게 어디서 째려봐.』 제지하려 다가서던 교직원이 위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주춤한다.
24일 오후 서울대대학본부. 학생처장실 다음의 목표는 총장실이었다. 『총장××가 얼마나 독한 ×이면 등록금 거둬서 요렇게 만들었나.』 방화철문 손잡이가 망치로도 부서지지 않자 한 학생이 천장을 뜯어내고 건너편으로 넘어간뒤 시멘트벽과의 틈새를 부수고 문짝째 넘어뜨린다.
입구에선 각목과 사과탄을 든 학생들이 달려온 교수들에게 『안기부 프락치가 있는 것같다』며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한 여교수가 『아줌마는 가라』는 야유에 눈물을 글썽거리자 『당신도 교수냐』고 다시 묻는다. 바로 밑 3층에선 10여명씩 짝을 지어 학생과·경리과 등의 캐비넛을 열고 서류를 뒤지는 「압수수색」이 벌어졌고 벽과 복도 여기저기에 스프레이로 구호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안기부의 똥개 대학본부 박살내자….』
「성공적인 투쟁이었다」는 자평과 함께 학생들의 실력행사가 일단 끝난뒤 긴급전체교수회의가 열렸다. 회의후 교수들은 회의장을 나와 침통한 표정으로 현장까지 침묵시위행진을 벌였다.
85년10월 학생회장이 교내에서 경찰에 붙잡혀가자 학생들이 본관건물에 돌을 던졌고, 86년과 87년엔 「전방입소 거부」「제적학생 복학」등의 이슈로 본관에 돌이 날아들긴 했으나 학생들이 건물안으로 들어가 기물을 부순 것은 이날 오후가 서울대 40년 사상 처음.
최근 대학가에선 「과격」양상이 두드러지면서 「민주폭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자신들과 다른 주장·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목적과 주장의 정당성만 내세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철하려는 태도.
이날의 참담한 정경을 보면서 「과연 대학과 대학인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교수님들뿐일까. 「농활」아니라 그어떤 명분으로도 납득이 어려운 일부운동권 학생들의 탈선앞에서 오늘의 대학상황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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