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수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건립추진위원회'가 2017년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어루만지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소녀상이다. [사진 수원시]

수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건립추진위원회'가 2017년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어루만지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소녀상이다. [사진 수원시]

수원에 거주하던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30일 세상을 떠났다. 14살 끔찍한 일을 당한 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던 안 할머니였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3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안 할머니 빈소에서 조문한 후 그동안 할머니와 함께해온 조카와 수원평화나비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표 의원은 “할머니께서는 노환으로 편안하게 운명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수원 지역 학생들이 안 할머니와 함께 시민들 뜻을 모아 소녀상을 지키고, 독일에도 소녀상을 건립하는 등 평화활동 해준 덕에 할머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에 감동했다”며 “수원평화나비와 수원 청소년평화나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41년 중국으로 끌려간 안 할머니는 1945년까지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1946년 귀국한 안 할머니는 58세이던 1986년부터 수원에서 거주했다. 1993년 막내 조카의 신고로 안 할머니의 위안부 기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안 할머니가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던 것은 아니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30일 블로그에 2002년 안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며 “벌써 할머니의 부재가 실감이 안 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안 할머니는 위안부 신고 후에도 대인기피증을 이유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알게 된 윤 대표는 안 할머니를 찾아 자신이 믿어도 될 사람이라는 신뢰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계속된 만남에 서서히 마음을 연 안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로 끌려간 이야기를 하던 날, 할머니는 삼십 분마다 담배를 피웠다. 14살 끌려갔던 전쟁터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피우게 됐던 담배였다. 윤 대표는 “남편이고 자식이라며 담배를 피우실 때, 끊으라고 말씀이라도 드려볼걸”이라며 후회하기도 했다.

이후 안 할머니는 수원평화나비, 청소년평화나비와 함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 수원 권선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안 할머니는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소녀상을 건립해 줘서 감사하다”며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후손들이 편히 살 수 있다. 평화로운 시국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할머니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주고자 할머니의 삶을 다룬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제작, 지난 8일 공개하기도 했다.

안 할머니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9명으로 줄었다. 올해만 위안부 피해자 3명이 눈을 감았다.

안 할머니의 빈소는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4월 1일.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