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거주하던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30일 세상을 떠났다. 14살 끔찍한 일을 당한 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던 안 할머니였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3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안 할머니 빈소에서 조문한 후 그동안 할머니와 함께해온 조카와 수원평화나비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표 의원은 “할머니께서는 노환으로 편안하게 운명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수원 지역 학생들이 안 할머니와 함께 시민들 뜻을 모아 소녀상을 지키고, 독일에도 소녀상을 건립하는 등 평화활동 해준 덕에 할머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에 감동했다”며 “수원평화나비와 수원 청소년평화나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41년 중국으로 끌려간 안 할머니는 1945년까지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1946년 귀국한 안 할머니는 58세이던 1986년부터 수원에서 거주했다. 1993년 막내 조카의 신고로 안 할머니의 위안부 기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안 할머니가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던 것은 아니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30일 블로그에 2002년 안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며 “벌써 할머니의 부재가 실감이 안 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안 할머니는 위안부 신고 후에도 대인기피증을 이유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알게 된 윤 대표는 안 할머니를 찾아 자신이 믿어도 될 사람이라는 신뢰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계속된 만남에 서서히 마음을 연 안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로 끌려간 이야기를 하던 날, 할머니는 삼십 분마다 담배를 피웠다. 14살 끌려갔던 전쟁터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피우게 됐던 담배였다. 윤 대표는 “남편이고 자식이라며 담배를 피우실 때, 끊으라고 말씀이라도 드려볼걸”이라며 후회하기도 했다.
이후 안 할머니는 수원평화나비, 청소년평화나비와 함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 수원 권선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안 할머니는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소녀상을 건립해 줘서 감사하다”며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후손들이 편히 살 수 있다. 평화로운 시국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할머니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주고자 할머니의 삶을 다룬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제작, 지난 8일 공개하기도 했다.
안 할머니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9명으로 줄었다. 올해만 위안부 피해자 3명이 눈을 감았다.
안 할머니의 빈소는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4월 1일.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