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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6·25 당시 8시간 동안 공무원 2000명 학살…유족 "남북 정상회담서 다뤄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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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피해자들을 기다리는 가족. [협의회 홈페이지 캡처]

납북 피해자들을 기다리는 가족. [협의회 홈페이지 캡처]

북한군이 6·25전쟁 당시 사흘에 걸쳐 약 2000명에 달하는 남한 공무원을 학살한 사건이 미군의 기밀문서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를 안건에 올려달라고 호소 중이다.

28일 청와대 앞을 찾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사진 협의회]

28일 청와대 앞을 찾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사진 협의회]

28일 오전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납북 피해자 문제를 안건으로 삼아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말하려면 휴전협정에서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지금까지 고통받는 전쟁 납북 피해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쟁납북자란 대한민국 민간인으로 6·25 전쟁 중 북한에 납치된 후 귀환하지 못한 국민들이다.

이 기밀문서에 따르면 북한 내무성 소속 부대는 1950년 10월 남한 공무원 약 2000명을 평안남도 대동군의 한 언덕에서 학살했다. 그해 9월은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북한으로 진격하던 때였다. 북한군은 당시 인도받았던 2000여 명의 포로를 모두 학살했다. 이들은 서울과 개성 지역 공무원들이었다.

학살은 10월 8일 자정 무렵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포로 800~1000명을 총살했다. 다음날인 9일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같은 방식으로 학살했다. 8시간 만에 2000여 명을 학살한 것이다. 북한군은 시신을 쉽게 매장하기 위해 대형 구덩이 3개를 미리 파 두고 구덩이 주변이나 안에 포로를 세웠다.

이 대형 무덤은 당시 미군과 국군의 현지 조사에서 확인됐다. 미군은 첩보를 듣고 같은 해 11월 조사에 나섰다. 이 지역을 방문한 조사단은 가로세로가 각 15m 이상, 깊이 2m에 달하는 대형 집단 무덤 3곳을 찾아냈다.

이 문건은 1953년 6월 미군 후방기지사령부가 학살에 가담한 북한군 포로 3명과 민간인 목격자 증언,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미일(69)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번 학살 사건으로 한국전쟁 당시 납북 피해가 명확히 증명됐다"며 "4월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런 납북 피해를 다루지 않는다면 그 평화는 가짜 평화"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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