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포기 후 안전보장 어떻게 해주느냐가 비핵화 성공 관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북핵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③ ‘9·19 성명’ 초안 만든 중국 양시위

6자회담 중국 차석대표로 대북 협상에 참여했던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양시위 연구원. [중앙포토]

6자회담 중국 차석대표로 대북 협상에 참여했던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양시위 연구원. [중앙포토]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 소속의 양시위(楊希雨) 연구원은 북한과의 협상 경험을 가진 외교관 출신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중국 차석 대표로 참여했다. 비핵화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6개국이 서명한 성과물인 9·19 공동성명도 그가 초안을 기초한 것이다.

김정은, 카다피 최후서 교훈 얻어 #양자 및 다자 틀로 체제 보장해줘야 #북·미 입장차 커 합의 쉽지 않을 듯

양 연구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자 및 다자간 틀로 핵 포기 이후의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을 어떻게 해 주느냐가 비핵화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양측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전망을 펼쳤다. 다음은 주요 문답.

북한이 갑자기 대화를 하겠다고 나온 원인은 무엇일까.
“북한은 핵무력과 경제의 병진 노선을 추구해 왔지만 지금은 제로섬 게임이 되어버렸다. 핵·미사일 개발은 진전을 이뤘지만 그로 인한 제재와 압박은 경제발전에 장애물이다. 경제를 추구하려면 핵 포기를 피해 갈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북한에 핵 포기 의사가 있다면 비핵화 성공의 관건은 무엇일까.
“북한으로 하여금 안심하고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를 국제사회가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핵심이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전부 폐기하고 미국은 제재를 풀고 원조까지 제공했다. 하지만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아는 바다. 북한은 여기서 교훈을 얻었다. 국제사회가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의 ‘철저한’ 핵 포기와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에 대한 ‘철저한’ 해결이 맞바꿔져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양자 및 다자간에 안전보장을 하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가 나온다. 또 2000년 워싱턴에서 발표한 북·미 공동문서에 근거해 ▶상호 불위협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의 신형 북·미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과연 성과가 나올까.
“회담 후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북한은 ‘새로운 지위’에 기초해 미국과 대화하고자 한다. 지난해 말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뤘다고 선포했다. 다시 말해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당시에 비해 실력과 지위가 수십 배 강해진 만큼 이번 회담에서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반면 미국은 제네바 합의나 (오바마 정권 초기의) 2·29 합의 파기를 경험한 뒤로 다시는 제네바 합의와 같은 식의 양보를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 한쪽은 값을 높게 부르고, 한쪽은 훨씬 더 낮추려고 한다. 이것이 난관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은 비핵화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입장 차이가 너무 커 합의에 이르는 건 말 그대로 지난한 일이다.”
북한의 협상 스타일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노력을 다해 한반도 평화와 핵 문제를 북·미 양자 간의 문제로 치환하려 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상대적 약자로서 한·미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한·미의 북한에 대한 불신보다 훨씬 강하다. 이는 한·미가 종종 무시하는 중요 문제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최대 난제는 북한의 불신을 해소하거나 덜어주는 데 있다. 만일 신뢰가 쌓이면 북한은 성의를 갖고 협상에 임할 것이다.”
최근 일련의 정세 변화 과정에서 중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차이나 패싱론’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비핵화와 지속적인 평화안정이다. 만일 남북, 북·미 회담이 이 목표를 이끌어 낸다면 비록 중국이 참여하지 않았다 해도 지지하고 기뻐할 것이다. 중요한 건 비핵화지 중국이 소외됐는지 여부가 아니다. 94년 북·미 비핵화 협상으로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했을 때 중국은 충심으로 지지했다.”
만일 북·미 수교가 이뤄져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되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 점에서 중국은 전략적 자신감이 있다. 북한 혹은 통일된 한반도가 친미가 되든 되지 않든 중국과 적대관계 수립을 꾀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중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게 북한 혹은 한반도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웃 나라가 미국과의 관계를 이용해 중국과 맞서려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활용해) 중국과 대항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북·미 회담 장소로 베이징이 될 가능성이 있나.
“기술적인 면에서 베이징이 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베이징 회담이 성사되기란 매우 어렵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