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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3.'대륙 술꾼' 김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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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0년대 말 ‘대륙의 술꾼’ 김태선(左)과 자리를 함께 한 백기완(中), 필자.

내가 좋아하는 역사 속의 2인자는 중국의 명 총리 저우언라이다. 그는 왜 평생 마오쩌둥의 그림자로 살면서 2인자의 자리에 만족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내가 직접 만났던 2인자들도 멋지기는 그에 못지않다. 재야 인사 계훈제 선생이 그렇다. 평생 장준하를 눈물겹게 보필했던 사람이다. 나도 장준하 선생을 잘 알지만 계 선생님은 그보다 더 인간적이다.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백기완의 그림자로 남고 싶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간혹 나에게 묻곤 한다. "어이 배추, 당신은 왜 백기완 앞에서는 그렇게 쩔쩔 매냐?" 그때 들려드리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게 있고, 변하면 안 되는 원칙이 있어요" 나는 그게 바로 의리라고 본다.

백기완의 사람됨은 6년 전 한겨레신문에 냈던 추모광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광고 제목은 '대륙의 술꾼 김태선 선생을 추모합니다' 내용이 더 걸작이다. 2년 전 타계한 그를 기리는 모임을 서울 동숭동에서 연다는 광고다.

"돈 있는 사람 회비를 왕창 내시고, 없는 이는 그냥 오시오. 추모위원장 방배추. 집행위원장 주재환(화가), 집행위원 김용태(현 민예총 위원장).임진택(축제 연출가)"

김태선은 내 친구이자 백기완의 평생 친구이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그는 일생을 직업 없이 살았다. 요즘 기준으로는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한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집에서 기식했을 정도로 수완꾼이었다. 문학 식견은 신경림 시인도 인정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가 간 지 2년이 지나도록 백기완은 그를 잊지 못했다.

"태선이는 생전 신문에 자기 이름이 나본 일이 없잖아. "

눈물과 노래가 어우러졌던 그 추모 모임에서 그렇게 말했던 멋쟁이가 백기완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더욱 그리운 낭만과 멋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2000년 12월 열렸던 추모모임에는 김도현(전 문화관광부 차관)과 김태선의 딸.사위까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김태선은 괴짜였다. 그는 1990년대 외국여행을 잠시 갔었다. 그때 그가 서울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봉투에는 그림 한 장만이 덜렁 들어있었다. 큼지막한 누렁이 한 마리, 그 옆에 소주 한 잔. 그게 전부였다. 글자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귀국하면 보신탕과 함께 술 한잔 하자는 제안이다.

당시 나는 충남 홍성에서 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홍성역에 막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술 한 잔을 하고 싶어 김포공항에서 논스톱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수완이 무척 좋았던 그는 얻어먹는 데도 귀신이었다. 식당에서 회사원들이 사인해놓고 월말 계산하는 걸 알아 채면 주인과 말을 몇마디 나눈 뒤 한 달쯤 공짜 밥을 먹는 건 예사였다.

그러던 그가 저승 가기 몇 해 전 몸이 망가져 술을 마시다가 코피를 주르르 흘렸다. "어쩌지?"하고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면 "벌거냐? 술로 틀어막으면 되지"하며 또 들이키곤 했다.

이태백처럼, 아니 바람처럼 살다가 이 풍진 세상을 하직한 김태선이나 나의 벗 백기완이야말로 낭만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배추 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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