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학대·빈곤에 처한 아동, 빅데이터로 찾아내 보호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17살 보형(가명)이는 아버지와 함께 한 평 남짓한 여관방에서 살고 있었다. 방에는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였고, 참기 힘들 정도로 악취가 가득했다. 이런 사실은 주민센터 공무원이 확인했다. 이 공무원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올라온 정보를 보고 보형이가 위험에 처했다는 걸 알게 됐다. 공무원은 주거비 지원을 받게 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조치했다. 아버지가 아이를 방치하는 아동학대(방임) 행위가 의심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했다.

정부 ‘e아동지원시스템’ 전국 확대 #장기결석·접종여부 읍·면·동 통보 #공무원 현장 확인, 돌봄기관 연결

6살 선혜(가명)는 또래보다 말이 늦다. 출산 당시 부모가 미성년자라서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다. 정부 시스템이 선혜가 위기에 놓였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를 전달받은 현장 공무원이 상담을 거쳐 복지지원 대상자로 선혜를 선정했다. 아이에겐 언어 치료와 생활비 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다.

학대·빈곤 등 각종 위기에 처한 아동을 빅데이터로 빨리 찾아내서 보호하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19일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가동한다. 이 시스템이 가려낸 2만1000여명의 위기 아동 명단을 우선 읍·면·동 주민센터에 전달하고, 담당 공무원이 5월말까지 방문해서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아동학대는 은폐된 공간에서 의사 표현이 어려운 아동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아동이 숨지거나 크게 다친 뒤에야 학대 사실이 밝혀지곤 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도 행정 자료 미비 등으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복지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사회보장서비스 정보를 확인해서 보호가 필요한 가정을 먼저 예측하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그것이다. 지난해 개발해 다듬어왔다. 이 시스템은 정부 자료를 활용해 장기간 결석하거나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이를 찾아낸다. 또 병원 방문 기록을 활용한다. 두 달마다 위기 의심 명단을 해당 읍·면·동에 통지하고 공무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확인한다.

복지 서비스를 지원할 필요가 있으면 드림스타트(저소득층 아동 맞춤형 돌봄) 등의 기관에 연결해준다. 학대가 의심되면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알려 추가 조사에 나서게 된다. 이보미 복지부 아동권리과 사무관은 “아동이 있는 빈곤 가정의 복지 서비스 수요를 집중적으로 확인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일차적으로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발견하는 것이고, 현장 조사에서 학대 위기 징후를 확인하면 아동을 보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시스템 정식 가동을 앞두고 지난해 9월~올해 2월 수도권 66개 시·군·구(974개 읍·면·동)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했다. 그랬더니 1만3000여명을 위기 아동으로 예측했고, 해당 지역 공무원이 양육 환경과 복지 수요를 확인해서 사각지대 아동 620명에겐 교육·의료 등을 지원했다. 아동 학대 징후가 발견된 6명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