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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다리 미치광이'→'집권자'…북한, 트럼프 비난 수위 낮췄다

중앙일보

입력

트럼프(左), 김정은(右)

트럼프(左), 김정은(右)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철저한 지도 감독 하에 제작되는 노동신문이 1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 집권자”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해 1월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북한이 지금까지 썼던 호칭 중에서 가장 ‘점잖은’ 표현이다. 북ㆍ미간 설전(舌戰)이 한창이던 지난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늙다리 미치광이’ ‘골목깡패’ ‘미친개’ 등의 원색적 문구를 동원해 비난을 쏟아냈다. 노동신문은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을 ‘미 집권자’로만 지칭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대미 메시지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의 해당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재ㆍ알루미늄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북한의 대미 비난 단골 소재인 한미 연합훈련이나 대북 제재 관련 내용은 없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지난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지난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해당 기사는 ‘미국이 쏘아올린 무역 전쟁의 신호탄’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미 집권자가 자국이 수입하고 있는 철강재에 25%, 알루미늄 제품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표했다”며 “만일 이것이 그대로 실행되는 경우 미국을 시장으로 삼고 있는 서방국가들은 물론 세계의 많은 나라 철강재 및 알루미늄 제품 생산업체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전했다. 관련 내용도 기존의 원색적 비난 일변도와는 온도차가 있다. 중국과 유럽 등에서 비판이 일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 미국에 대한 비난은 글 후반부에서 “이런 정책은 미국에 맞서는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자기들의 손아귀에 틀어쥐자는 것이다” 정도로 그쳤다.

노동신문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해 “미 집권자”라는 표현을 쓴 게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엔 “미 집권자가 직접 나서서 조선(북한)과 중대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느니 나발을 계속 불어댔다”는 과격한 비난과 함께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을 ‘꼬마 로켓맨(Little Rocket Man)’이라며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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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동신문을 포함한 북한 관영매체는 남북 및 북ㆍ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일체 함구하고 있다. 북한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총연합회(조선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가 북ㆍ미 정상회담 소식을 10일 전했지만 다음날 바로 삭제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백태현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도 나름대로 입장 정리에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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