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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를 보면 우울하다는 당신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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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효리네 민박’이 모두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건 아니다. 푸르른 섬마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흡사 소꿉놀이하듯 사는 그네들 결혼생활을 보고 있자면 울컥 화가 치민다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눈만 마주쳐도 함박웃음이 절로 터지는 두 사랑꾼의 모습이 이 땅의 숱한 ‘현실 부부’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맞벌이 부부가 온종일 상사에게 시달리다 돌아와 어떻게 좋은 말이 나오겠나. 우리는 모아놓은 돈이 있어 여유롭게 사니 서로 잘해줄 수 있는 거다.” 남들 불편한 심기까지 두루 헤아리는 이효리씨의 속 깊은 말이 되레 적잖은 위로가 된다.

친구·지인에 유명인까지 ‘이웃 효과’ 미치는 세태 씁쓸 #GDP와 행복 순위 격차 줄이려면 비교의 악습 떨쳐야

‘이웃 효과’란 말이 있다. 친구가 새 차를 사면 멀쩡한 내 차가 똥차로 느껴지고, 옆집 애가 서울대 합격했다는 소식에 서울에 있는 대학 간 것만으로 충분히 자랑스러웠던 내 자식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심리를 일컫는다. TV와 인터넷, 거기다 망할 놈의 SNS 덕분에 친구와 이웃은 물론 효리씨 부부 같은 유명인들까지 비교 대상으로 삼게 된 요즘, 너나없이 우울감이 치솟고 자존감은 곤두박질치기 십상이다.

평생 행복 연구에 천착해온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했던 것도 이런 취지였다. 평범한 이웃들이 비싼 집, 명품 시계 등 부유층의 과시적인 소비를 부러워하다 공연히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거다. 그러니 공해를 배출하는 기업에 벌금을 물리듯 시기심 유발도 일종의 사회적 공해로 간주해 징벌성 세금을 매겨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부자들로선 가슴 철렁한 소리겠지만 실현 가능성 유무를 떠나 분명 공감 가는 구석이 있긴 하다.

베스트셀러였던 『행복의 지도(The Geography of Bliss)』를 보면 스위스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시기심이 행복의 커다란 적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나. 부와 성공을 뽐내는데 지극히 익숙한 미국인 저자로선 자신의 성취를 숨기려 애쓰는 스위스인들이 솔직히 이상하게 보였다고 고백한다. 아무튼 스위스가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칭송받는 비결은 그 유명한 아름다운 경치 때문만은 아니란 얘기다.

행복의 조건이 어디 한둘뿐이겠나. 소득·건강·자유·관용·돌봄 등등 세계 각국의 ‘행복 성적표’를 내기 위해 유엔 자문기구가 따지는 주요 잣대만 봐도 가지가지다. 해마다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에 발표되는 이 성적표에서 한국은 지난해 155개국 중 56위였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 비하면 낮아도 한참 낮은 순위다.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행복(GNH)이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 국가로 꼽힐 법하다.

‘행복한 가정은 다들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이른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는 걸까. 그 답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도가 왜 낮은지는 짐작할 만하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며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스펙, 더 많은 재산을 위해 밤낮없이 과로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 아닐지. 국민 대다수가 여전히 가난했고 독재에 시달렸던 1980년대에 10만명당 10명 이하였던 자살자 숫자가 오히려 선진국 문턱에 선 지금 30명에 육박하는 것도 그 탓이 클 게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며 살라’고들 한다. 굳이 나보다 잘 나가는 인간들 올려다보며 자학하기보단,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 돌아보면서 하루하루 감사히 사는 게 소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좇기 전 먼저 갖춰야 할 마음가짐 아닐까. 이렇듯 우리가 각자의 ‘멘탈’을 챙기는 사이 정부도 국민 행복의 여러 조건을 두루두루 살펴 주길 기대한다. 매년 이맘때면 나오는 국가별 행복 성적표를 받아 들곤 상대적 박탈감에 다들 우울해지지 않도록!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