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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 관련 문서에 부인 아키에 이름 삭제 …휘청대는 아베의 5년 왕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고하기만 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성(城)이 흔들리며 일본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이 10~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한달 전 보다 6%포인트 하락한 48%였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 압승 이후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50%밑으로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12월 재집권이후 5년여간 내각 지지율이 30%대초반까지 빠진 적도 있었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지지율 하락을 부른 원인이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日재무성 "모리토모 문건 조작 14건 있었다"인정 #아베 부인 아키에 관여 의혹 내용도 나중에 삭제 #야당 "아키에 여사 국회 청문회 증인 세우겠다" #아베 지지율 한달새 6%빠져,5개월만 첫 50%밑 #후지TV 조사서도 "아소 재무상 퇴진 찬성" 70%넘어 #아베 "책임 통감한다"면서도 아소 퇴진엔 반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오후 평창 블리스힐스테이트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오후 평창 블리스힐스테이트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이 초등학교 부지로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 부부가 개입했다는 ‘모리토모 사건’,특히 재무성이 관련 문서를 조작한 것이 결정타였다.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재무성 관료가 자살하고, 2016년 6월 국유지 매매 계약 당시 담당 국장이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寿) 국세청장이 지난 9일 전격 사퇴한 데 이어 재무성은 12일 “문서 조작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아베의 앙숙’인 아사히 신문이 2일자에서 “계약 당시의 재무성 문서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다르다”고 폭로한 지 열흘만에 일본 정부가 백기를 든 것이다.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로이터=연합 뉴스]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로이터=연합 뉴스]

 모리토모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뒤인 지난해 2월 이후 재무성이 특혜시비를 부를 만한 내용들을 빼거나 조작한 문서가 14건이나 됐다. 특히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恵)여사 관련 내용을 삭제한 건 정권의 도덕성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중앙포토]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중앙포토]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2014년 4월 재무성과의 협의 도중 모리토모 학원측이 “국유지를 함께 찾았던 아키에 여사가 ‘좋은 토지이니 이대로 추진하시면 되겠네요’라고 밝혔다”는 부분이 당초 문서엔 있었지만 국회 제출 문서에선 삭제됐다.

아키에 여사의 이름은 이 사건에 종종 등장했다. 아키에 여사는 모리토모 재단이 지으려던 초등학교의 명예교장까지 맡았다. 또 정부와 국유지 가격협상을 벌이던 사학재단의 전 이사장이 재무상의 담당자에게 “아베 부인에게서 ‘어떻게 되가느냐.분발하세요’라는 전화가 왔다”고 밝힌 녹취록도 이미 공개됐다.

야당은 재무성의 총 책임자인 아베의 오른팔,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 겸 재무상을 1차 타깃으로 삼고 있다. 아소를 먼저 퇴진시킨 뒤 아베 내각 전체를 붕괴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후쿠야마 데쓰로(福山 哲郞) 간사장은 기자 회견에서 "국회 심의의 신뢰와 전제를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전대미문의 사태"라며 "정부 전체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라고 말했다.

코너에 몰린 아베 총리는 선제적으로 퇴임시킨 사가와 국세청장(전 재무성 국장)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12일 기자들과 만난 아소 재무상이 “문서 조작 지시는 사가와 전 국장이 한 것”이라고 못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리관저는 현재로선 아소 재무상을 퇴임시킬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가 속해있는 호소다(細田)파에 이어 자민당내에서 두 번째로 큰 아소파의 수장을 희생시킬 경우 정권의 한 축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의 3연임 가도가 험난해 질 수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재무성이 최선을 다해 조사를 하고 있고, 아소 부총리가 총 지휘를 해야 한다”고 방어막을 쳤다. 아소도 이날 회견에서 진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랐다.
아베 총리는 "행정 전체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는 사태다. 행정의 장(長)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국민들께 사죄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소 사퇴론에 대해선 "조직을 다시 세우는데 전력을 다하길 바란다"며 부정적이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심각한 표정으로 12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심각한 표정으로 12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아소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산케이 신문 계열 후지 TV의 여론조사(10~11일)에서 조차 아소 재무상의 사퇴를 주장하는 응답이 “즉각 사임”(17.9%),“문서 조작이 사실이라면 사임”(53.1%)을 합쳐 71%에 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버티다 버티다 쓰나미가 자신에게까지 덮치는 상황이 오면 아베가 아소의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총리의 부인이 국회 청문회에 서야할지 모르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일본의 6개 야당은 12일 회담을 열고 "아키에 여사와 사가와 전 국세청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합의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개입을 증명하는 추가 폭로 한 방만 터진다면 그에겐 회복 불능의 타격이 될 수도 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2019년은 지방선거와 참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새로운 당의 간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내에서도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닛케이는 아베 총리에겐 숙원사업인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2018년 헌법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개헌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꼬리 자르기를 통해 이번 위기를 억지로 봉합하더라도 9월 총재 선거에서 위기가 찾아올 수 있고, 설사 총재 자리를 유지하더라도 국민여론이 찬반으로 맞서있는 헌법 개정을 밀어부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약점을 노출한 아베를 향해 경쟁자들의 공격도 시작됐다. 9월 총재 경선에 출마예정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전 간사장은 “누가 (지시를)했는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자민당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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