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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논쟁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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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통령은 올해 초 자신의 신년 연설로 인해 제기된 증세논쟁과 관련해 증세가 된다고 해도 상위 20%의 고소득자가 대부분 부담하게 되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걸 강조했다. 이 말은 근로소득세 납부자 중 상위 20%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90% 이상을 납부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를 놓고, 대통령의 해석과 필자를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의 해석은 다른 것 같다. 우선, 근로소득세 납부자 중 상위 20%는 약 250만 명의 봉급생활자이며, 이들은 고소득 자영업자 및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돼 있는 실소득 상위 20%와는 다르다.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 그리고 각종 자산소득 등을 포함한 전체 소득계층에서 볼 때 이들의 대부분은 사실 중산층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은 결국 중산층 이상의 봉급생활자들에게 증세 부담을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중산층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결국 세원을 넓히는 방법밖에는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고소득을 올리며 세금을 적게 내는 사람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지나치게 높은 면세자의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부 소비세의 증가가 될 것이며, 지난해 가을에 제기됐던 소주세 인상이 이 범주에 해당할 것이다. 이 중 첫째 방법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민 사이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방법은 결국 서민들의 부담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즉 대통령의 제안대로 근로소득세 상위 20%에 증세를 하게 되면 중산층 봉급생활자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며, 이를 피하기 위해 세원을 넓히다 보면 결국 서민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이다.

아마도 정치적으로 가장 환영받을 수 있는 증세정책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고소득자들의 소득을 파악해 이들에게 증세의 부담을 대부분 전가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 역시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가져 올 수 있다. 선진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고소득자들에 대한 증세 압력은 이들의 절세 노력을 배가하게 되며, 일반적으로 민간의 투자 및 소비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만일 투자가 위축돼 고용창출이 힘들게 되고 소비가 위축돼 영세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감소한다면, 이는 결국 서민들의 피해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증세정책은 어떤 방향이든지 간에 결국에는 서민들의 부담을 증가시키게 되며, 자칫하면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성장정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내수를 회복시켜 기존의 세제로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증세정책의 시시비비를 떠나 지난주 토론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부동산 및 증세, 그리고 교육을 포함한 모든 사안을 고소득층과 서민들 사이의 편 가르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무척 많은 경우 오히려 서민들의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 이제는 정책의 초점이 우리 사회 60% 이상을 구성하고 있는 중산층에 맞추어져야 한다. 또한 정책의 방향 역시 정부 주도의 소득재분배를 통한 성장의 도모가 아니라, 민간 위주의 성장을 통한 분배구조 개선이 돼야 할 것이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