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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특사단 만찬 자리, 이설주 동석은 의미심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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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15면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한반도 정세 진단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8일 민화협 사무실에서 ’정부와 민간 이 투 트랙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8일 민화협 사무실에서 ’정부와 민간 이 투 트랙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북 특사 교류에 이어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성사됐다. 대북 민간 교류 창구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당장 김홍걸(55)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방북을 추진하고 나섰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3남이란 특수성을 감안할 때 그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의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적잖다.

24년 전 카터 부부가 평양 갔을 때 #김일성·김성애 함께 만난 게 유일 #‘우리에게 좋은 선물 있구나’ 생각 #김정은, 젊은 엘리트 참모진 보좌 #김여정도 경제·외교 일대일 과외 #트럼프·김정은 ‘통 큰 결단’ 스타일 #협상 성공 땐 ‘중재자 한국’ 부각

 지난 8일 서울 마포의 민화협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급변하는 남북 관계에 대한 진단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김 의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권 핵심 인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남북 문제에 있어 나름의 비중과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나는 민간인일 뿐”이라면서도 특사 교환을 전후한 정부 분위기와 북한 지도자에 대한 내부 평가, 방북을 둘러싼 대북 접촉 뒷얘기 등을 조심스레 풀어냈다.

특사 방북 성과가 예상외로 크다.
“이미 북측이 상당히 통 큰 결단을 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갔다고 본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때 김여정이 특사로 온 것도 파격이라 폐막식 때 또 누가 오겠나 싶었는데 김영철이 오지 않았나. 그때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해 들으면서 ‘아, 이거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이 있었나.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단과 만찬 때 부인을 데리고 나온 게 가장 의미심장했다. 보통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공식 행사에 부인을 대동하지 않는다. 북한도 딱 한 번 외부 세계에 공개되는 자리에 부인을 등장시켰다. 24년 전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방북하자 김일성 주석이 부인 김성애와 함께 대동강변을 둘러봤던 게 유일했다. 그런데 이설주가 만찬장에 나온 걸 보고 ‘우리에게 뭔가 좋은 선물을 줄 게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말을 멈춘 뒤) 실제로 특사단이 방북하기 전 청와대 분위기가 상당히 희망적이었다. 좋은 신호를 받았구나 싶었다. 문 대통령도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가 성과가 없으면 정치적 타격이 만만찮을 것인 만큼 쉽게 결단할 수 없었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앞당기기로 한 것은 잘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시간 끌기라는 의구심도 적잖다.
“오히려 시간은 저쪽이 많지 않다. 지금 한가하게 시간 벌기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유엔 제재 완화도 당장 되는 게 아니라 뭔가 결과가 나와야 가능하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도 올해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핵 개발과는 별도로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그러려면 제재와 압박을 어떻게든 풀어야 할 처지다.”

 그러면서 그는 “북·미 양국의 국내 정치적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북한이 미사일을 쏘다가 돌연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때 ‘어, 우리가 보기엔 10~20% 부족해 보이는데 왜 벌써 저러지’ 싶었다. 추후 미국과 협상하게 될 때 ‘핵 보유국이 되니 미국이 굴복한 것’이라고 대내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미국도 여기서 북핵 개발을 중단시키면 ‘부시·오바마 정권이 못 해낸 걸 우리가 해냈다’며 선거 호재로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양쪽 모두 내부적으로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절묘한 조건과 타이밍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일 파격 행보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젊은 나이에 집권하고 권력 투쟁도 거치지 않았다. 외국에서 유학하며 실용적 사고도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국제 감각이 있고 실력 있는 젊은 엘리트들의 집중 보좌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여러 국내외 인사들에게 들었다. 그 참모들은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아 아직 정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여정에 대한 평가는.
“김정일 위원장의 동생 김경희는 사실상 그냥 가정주부였지만 지금의 김여정은 전혀 다르다. 이번 방한 때도 오빠 못지않게 상당히 스마트하고 배짱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김 위원장이 경제·외교 등 각계 전문가를 김여정에게 붙여 일대일 과외수업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방북을 추진 중인데.
“이미 해외 루트를 통해 북측과 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북측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한 데다 북측도 정권이 바뀐 상태라 우리가 옛날 생각만 하고 일방적으로 이런저런 교류를 하자고 얘기하는 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방북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다.”

 

언제부터 북측과 접촉했나.
“지난해 가을부터다.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는데 그럴수록 방북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정부 간 대화가 막혀 있으니 민간 차원에서라도 풀어보려 한 거다. 북측이 늘 6·15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하지 않나. 그러니 DJ 아들이 간다고 하면 거부할 명분이 없겠다 싶었다.”

 김 의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조문차 이희호 여사와 함께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번 방북이 성사되면 두 번째 평양행이다. 그는 “4월 남북 정상회담 전이라도 북측의 공식 초청만 오면 곧바로 방북할 예정”이라며 “북측 반응도 괜찮은 만큼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민간 교류 활성화 복안은.
“기본적으로는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이 가능할 거다. 학술·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인적 교류도 추진 중이다. 지금 분위기로 보면 올해 안에 굉장히 활성화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문화 교류도 과거보다는 좀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것 같더라.”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을 평가하자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운전자론을 얘기하면 미국 관리들도 ‘당신들이 무슨 능력으로’라는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미국도, 북한도 우리의 중재자 역할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번에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 전 세계에 보여주면 우리 외교력과 국격도 엄청나게 상승할 수 있다. 더욱이 북·미 지도자도 통 크게 결단하는 스타일 아니냐.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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