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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폭력 신고하면 꽃뱀으로 몰리기 일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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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07면

조현욱 대한여성변호사회장

사진=신인섭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저녁 조현욱 대한여성변호사회장을 만났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법적 대응 방법 등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범여성계가 지원하기로 하고, 법률지원서비스 체제를 갖췄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법률 지원보다 미투 운동이 성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인식을 뒤집어엎는 사회운동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투 운동을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기 위해 겪는 ‘통과의례’로 보았다. 여성변회 초대 아동학대방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아동학대 문제가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반전되는 것을 보았다”며 “이번 미투 운동도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이 투쟁해 왔던 성폭력 문제를 혁명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예훼손죄로 협박하는 가해자 #성폭력에 침묵하는 내부 조력자 #피해자에 되레 손가락질하는 사회 #쉬쉬하며 참느라 정신적 피해 커져 #‘성폭력, 명예훼손서 예외’ 입법 운동

드디어 권력형 성폭력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피해자들에게 “왜 지금 나서냐”는 등 모욕하는 사례가 많다.
“모든 형사사건에선 가해자가 나쁘고, 피해자는 동정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은 예외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그에게 의혹의 시선을 둔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스스로 숨기려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러다 피해망상증 등 정신적 피해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말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얘기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말하고 싶어도 무고·명예훼손죄 때문에 신고를 회피하는 경향도 있다.
“가해 남성들이 무고와 명예훼손죄로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이 합의금을 받고 소 취하를 해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금세 꽃뱀 취급을 당한다. 합의를 안 하고 고소를 당하면 조사를 받으러 수사기관을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피해를 당한다. 그래서 여변회에선 성폭력 사건에선 명예훼손 고소를 못하도록 하는 입법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문화예술계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처럼 권력형 성폭행에선 주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선 대개 가해자가 더 힘이 있는 경우가 많아 조직 구성원 등 제3자는 알아도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침묵만 하면 다행인데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해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다. 생계가 걸린 문제라서 나서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직장 내에 고충처리반 등 신고시스템을 만들어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조건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권력형 성폭력의 내부 조력자 문제도 나왔다. 이들을 처벌할 수 있나.
“공범과 방조범은 처벌할 수 있지만 내부 조력자를 처벌한 사례는 없다. 이런 문제는 법보다 내부의 견제와 감시 문화, 신고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선 처벌도 관대하고, 법적인 견제장치도 약하다.
“실제로 권력형 성폭력은 법적으로 입증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사장이 여직원에게 ‘내 애인을 하거나 아니면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취직도 힘든 여성이 생계 문제 앞에서 성관계를 용인하는 ‘경계성 성폭력’도 많다. 그러다 못 견뎌 어느 날 신고하면 그동안 받은 선물이나 문자 때문에 꽃뱀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생계를 손에 쥔 권력자가 성과 생존권을 바꾸자고 하기 때문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직원을 성노예화하는 권력자들에 대항할 방법은 없나.
“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증거에 의하기 때문에 대항할 방법은 별로 없다. 다만 이처럼 성폭력 양상의 다양함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섬세하게 대응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가 성범죄 대책을 내놨다. 형량을 늘리는 등 처벌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과연 이걸로 될까.
“일단 정부와 사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중요하다. 성폭력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우리도 줄곧 입법운동을 해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조현욱
법무법인 더조은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제28회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2008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전업. 여성변회 아동학대방지특별위원회 초대 위원장. 칠곡 아동학대 사건, 울산 아동학대 사건 등 다수의 아동학대 사건 피해자 지원 활동 등.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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