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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0년 전 패착 답습하는 한국GM 노조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린 'GM 문제 해결을 위한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중앙DB]

서울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린 'GM 문제 해결을 위한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중앙DB]

한국GM은 지금까지 4차례 노사교섭을 진행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노조는 ‘강경대응’을 선포하며 ^군산공장 폐쇄 철회 ^친환경차 생산 ^경영실사에 노조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GM 노조의 이런 강경한 태도는 20여 년 전 전미자동차노조와 똑 닮았다. 당시 미국 GM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 부품을 해외에서 위탁 생산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GM 노조는 이를 반대하며 1998년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은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차가 미국 시장에 안착할 기회를 줬다. 과격한 파업에 진저리가 난 일부 소비자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한때 50%를 넘나들던 GM의 내수 점유율은 28.3%(2002년)까지 하락한다.
한국GM 노조도 강경투쟁 일변도다. 적자 늪에 빠진 최근 2년 동안 31일이나 파업했다. 이 기간 수입차 업계는 사상 최대 판매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2월엔 메르세데스-벤츠(6192대)와 BMW(6118대)가 처음으로 한국GM 판매량(5804대)을 뛰어넘었다.

미국 GM과 오버랩되는 장면은 또 있다. 경영 상황이 나빠져도 전미자동차노조는 복지 혜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자리은행·유산비용 제도가 대표적이다. 일자리은행은 일자리가 부족해 실업한 근로자에게 임금·복지의 85~95%를 지급하는 제도다. 여기에 GM은 2005년부터 5년간 22억 달러(2조4000억원)를 지불했다. 또 GM은 퇴직 근로자의 의료보험·연금(유산비용)까지 내줬다. 이 돈을 마련하느라 GM은 자동차 1대당 가격을 1904달러(204만원)나 올려야 했다.

한국GM은 어떤가. 노조원에게 임금(평균 8700만원) 이외에도 1인당 2259만원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본지 2월 24일 6면). 또 GM 글로벌 사업장 중에서 한국GM은 가장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red plant)를 받는다.

물론 하나를 원하면 둘을 요구하는 건 전형적인 협상 전략이다. 하지만 20여년 전 ‘학습효과’를 경험한 GM 본사가 그때와 비슷한 강경투쟁 전략에 다시 응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무리한 요구로 협상을 지연하다가 자칫 신차 배정 시점을 놓친다면, 더 곤란해지는 쪽은 노조다.

문희철 기자

문희철 기자

2006년~2009년 GM 생산직 근로자의 절반(6만500여명)이 사직·퇴직했다. 2009년엔 미국 의회가 나서서 일자리은행 제도를 없애버렸다. 시간제근로자·이중임금제 등 노조에게 불리한 제도도 이때부터 대거 도입됐다. 20여년 전 ‘강경대응’이 낳았던 나비효과를 한국GM 노조도 곱씹을 때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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