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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충남도지사 관사엔 적막만… 安 "김지은씨에게 죄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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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충남 내포신도시 안희정 충남도지사 관사. 5일 오후 10시 취재진만 몰려있다. 신진호 기자

불 꺼진 충남 내포신도시 안희정 충남도지사 관사. 5일 오후 10시 취재진만 몰려있다. 신진호 기자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폭로된 5일 오후 10시 충남 홍성군 홍북읍 홍원로 15 충남도지사 관사. 나무로 마감된 단층 양옥엔 깊은 적막이 흘렀다. 모든 건물 조명이 꺼진 채 관사 앞에 게양된 충남도 깃발만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안희정 지사 오전 8시30분 출근 뒤 귀가 안해 #부인도 10시쯤 나간 뒤로는 연락 안되는 상태 #안 지사 페이스북 통해 "모두가 제 잘못" 밝혀 #도지사 후보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던 경비원은 "안 지사가 아침 8시 반쯤 출근해 귀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함께 사는 부인(53)도 이날 오전 10시쯤 외출해 돌아오지 않았다.

안 지사의 수행비서 김지은씨는 이날 밤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 지사가 4차례 성폭행하고 수시로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대개 해외출장 중이었지만 지난달 말 마지막 성폭행은 관사에서 이뤄졌다고도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한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 [사진 JTBC 캡처]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한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 [사진 JTBC 캡처]

안희정 지사는 JTBC에 “부적절했지만 강압이나 폭력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후 일체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윤원철 정무부지사와 신형철 비서실장 등 안 지사 측근 대부분도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언론 접촉을 피했다.

안 지사는 보도 직후인 오후 9시쯤 충남도 고위 간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조만간 기자들 앞에 서겠다.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도청에서는 이르면 6일 안 지사가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는 6일 오전 1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지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씨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오늘부로도지사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안희정 올림’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자신을 수행하는 정무비서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성폭했다고 폭로당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연합뉴스]

자신을 수행하는 정무비서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성폭했다고 폭로당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연합뉴스]

안 지사의 소식이 알려지자 충남도청은 충격에 휩싸였다. 늦게까지 일하던 도청 직원들은 퇴근도 못 한 채 망연자실해 했다. 저녁을 먹던 직원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도청 청사는 환하게 밝혀졌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승욱 전 정무부시장은 “못 믿겠다. 우선 사실인지 확인해봐야겠다”고 했다. 안희정 지사와 함께 3년 6개월 동안 부지사로 일한 그는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천안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안 지사 비서실장을 지낸 충남도의 한 국장은 “김지은씨는 대선 선거 당시 안희정 캠프에 합류한 사람”이라며 “자세한 내용을 몰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텔레그램 캡처. [중앙포토]

안희정 충남도지사 텔레그램 캡처. [중앙포토]

한 서기관급 간부는 “도청이 발칵 뒤집혔다. 사실이라면 충남도정 역사상 가장 큰 치욕이 될 것"이라며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낀다”라고 분노했다. 한 직원은 “지난해 수행 여비서를 채용할 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며 “하지만 지사가 맨날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길래 전혀 눈치를 못 챘다”고 했다.

충남도에서 국장을 지낸 전직 공무원은 “지은이가, 지은이가 그랬데? 큰일 났네”라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충남도청 한 6급 직원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도청 전체가 패닉”이라고 말했다.

충남도청 직원들은 도정 공백도 우려했다. 보건복지국의 한 사무관은 “앞으로 도정이 어떻게 될지 암담하다”고 했다. 또 한 직원은 “안 지사가 그동안 추진해온 3농혁신 등 주요 정책마저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충남 홍성 충남도청사 기자실에서 내년 도지사 선거·국회의언 재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충남 홍성 충남도청사 기자실에서 내년 도지사 선거·국회의언 재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원들은 특히 이날 오전 열린 도청 행사에서 안 지사가 직원들에게 한 발언에 더욱 분개했다. 안 지사는 이 자리에서 "최근 확산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인권 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민들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충남 서천군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김중원씨는 “안 지사가 예의 바르고 착하다는 인상이었는데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이제 안 지사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충남지역 한 대학교수는 “이번 일은 안희정 지사 본인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진보 진영의 충남지사 선거에도 큰 영향을 줄 것 같다”고 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정무비서) 성폭행이 폭로된 5일 오후 10시 충남도청사 5층 도지사 비서실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신진호 기자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정무비서) 성폭행이 폭로된 5일 오후 10시 충남도청사 5층 도지사 비서실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신진호 기자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복기왕 후보는 6일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복 후보는 민주당 중앙당 발표 전까지 공식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복 후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번 일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것 같다”고 했다.

박수현 후보는 보도 직후 안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캠프 사무실 플래카드를 철거했다. 양승조 후보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홍성=김방현·신진호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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