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 합법화 앞두고 터진 엽기살인 사건···日 민박 딜레마

[ 이슈 추적]

 6월 15일부터로 예정된 ‘민박 금지 전면 해제’를 앞두고 일본 사회가 술렁대고 있다.
 안그래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외국인 관광객들 때문에 "빈 방들을 민박으로 확 풀어놓으면 주변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최근 민박집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6월부터 팩스로 신고하면 누구나 민박 운영 #최근 미모의 20대 여성 민박서 외국인에 살해 #일본 언론들 "불법 민박들은 각종 범죄의 온상" #아베 정권,20대 외국인 관광객 늘리기 전략 #"관리자 없으면 손님들 안전도 보장 못해"반론

살해된 여성 피해자의 신체 일부가 발견된 일본 오사카의 맨션에 지난달 25일 경찰이 진입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중순 26세인 미국 국적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난 미모의 27세 여성을 살해한 뒤 시체를 훼손하고 유기한 사건이다.

그런데 용의자가 여성을 유인해 감금한 곳이 오사카(大阪)시내 한 맨션내 민박집이었다.
여성의 신체 일부가 발견된 곳은 오사카 시내의 또다른 민박시설과 교토시의 야산 등이었다.
또 용의자가 범행을 저지른 뒤 새로운 거처로 예약한 곳도 나라(奈良)현의 또다른 민박집이었다.

피해 여성의 신체 일부가 발견된 일본 교토시의 야산에 취재진들이 모여있다[AP=연합뉴스]

지난 1월말 입국한 뒤 오사카와 나라 등의 민박 몇 곳을 전전하며 여성들을 유인하고 결국 살인사건까지 저지른 것이다. 용의자가 범행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소위 ‘야미(闇) 민박’으로 불리는 무허가 민박집들이었다.

일본의 현행 법에 따르면 민박업자들은 정부로부터 ‘간이 숙박업자’허가를 받거나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된 지역 단체장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전국에서 5만개 정도로 추정되는 민박집 가운데 이런 정식 절차를 밟은 곳은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정식 허가를 받은 시설은 손님들의 신원이나 연락처,여권 번호 등을 관리 관청에 보고토록 돼 있지만 ‘야미 민박’들은 이런 관리를 받지 않는다.

살해된 여성 피해자의 시신 일부가 발견된 오사카의 맨션.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최근 '야미 민박'문제를 조명하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엔 “수속 절차는 모두 인터넷에서 했고, 실제 민박집 체크인때는 여권도 제출하지 않았다”는 한국인 여행객의 증언이 실리고 있다.

숙박자들에 대한 관리는 커녕 관리 담당 인원이 상주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헛점이 악용되면서 ‘야미 민박’이 범죄의 온상이 전락하고 있다는 게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8월 위조 카드를 이용해 현금지급기(ATM)에서 돈을 빼낸 대만인들이 묵은 곳도 도쿄 신주쿠(新宿)의 '야미 민박'이었고, 지난해 6월 미국에서 불법 각성제 1kg를 들여오다 적발된 범인들의 아지트도 비슷한 시설이었다.

지난해 7월 후쿠오카(福岡)에선 민박시설로 운영하는 원룸 아파트에서 한국인 여성을 성폭행한 30대 일본인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그 곳 역시 허가 없이 운영하는 불법 시설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정부는 외국인 여행객 유치를 명분으로 민박 사업에 채워져 있던 족쇄를 완전히 풀 계획이다.

지난해 6월 새로운 주택숙박사업법(민박신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올 6월부터 시행되는 이 법에 따르면 개인이나 기업이 자치단체에 신고서만 내면 연간 180일 한도내에서 민박 영업을 할 수 있다. ‘원칙적 금지’에서 ‘원칙적 허용’으로의 정책 대전환으로, 신고서 팩스 한 장이면 자유롭게 민박 영업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는 아베 정부의 관광 진흥 전략과 맞닿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2017년 2869만명인 외국인 관광객을 2020년엔 4000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게 아베 정부의 목표다.
민박 금지 해제는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들이 싼 값에 묵을 수 있는 시설을 대폭 늘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관광 진흥책이기도 하다. 특히 민박 이용자의 60%이상을 차지하는 20대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조치다.

 ‘야미 민박’들까지 합법화시켜 제도권내에서 관리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목표지만 기존 호텔업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24시간 스태프가 상주하며 화재나 지진 등의 재해나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호텔이나 여관과는 달리 민박은 관리자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쓰레기나 소음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아 인근 거주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것”,“현재의 ‘야미 민박’의 부작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박집을 무대로 엽기적인 살인사건까지 터지자 논란은 더 확대되는 모양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민박 해금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우려한 탓에 자체 조례제정 등을 통해 민박업을 규제하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신문의 집계 결과에 따르면 향후 관할지역내 민박업에 대한 관리 업무를 맡게될 102개 지자체 가운데 44곳이 민박업 운영 시기와 운영 가능 구역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를 이미 제정했거나 앞으로 제정할 예정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교토시의 경우 ‘평온한 시민 생활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로 주거전용지역에서의 민박 영업을 1월 15일~3월 15일 2개월간으로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도쿄 신주쿠구도 평일 민박 영업을 금지하는 내용을 조례에 포함시켰다.
이런 움직임에 맞서 셰어링이코노미(공유경제)협회 등을 비롯한 민박업계가 "영업 제한은 안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는 등 논란은 점점 더 확대될 전망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