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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원에 몇권이냐" 1000여명 모인 단체장 출판기념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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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장 찍으러 왔어유”…지방선거 출정식 방불케 한 단체장 출판기념회 

3일 오후 충남 서산시 서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이완섭 서산시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책을 구매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3일 오후 충남 서산시 서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이완섭 서산시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책을 구매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그런걸 왜 묻고 그래유. 난 그냥 눈도장 찍으러 왔어유~.”
자유한국당 이완섭(61) 충남 서산시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3일 오후 충남 서산시 읍내동 서산시문화회관. 이 시장의 저서 『해 뜨고 꽃피는 서산』 한 권을 구입한 이모(65)씨는 ‘책을 얼마주고 샀냐’는 질문에 “성의 표시만 했다”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문화회관 입구는 ‘눈도장’을 찍으러 온 인파로 붐볐다.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당 고위 인사 등 1000여 명 몰려 #현금 모금함에 카드단말기 설치, "40만원에 몇 권이냐" 묻기도 #1층엔 이완섭 갤러리 설치 사진·그림 걸려…칭찬 일색 축사

로비에는 커다란 모금함 4개가 보였다. 현장에서 책을 구입한 사람들이 돈을 넣으라고 설치한 것이다. 현금을 준비 못한 참석자들을 위한 카드단말기도 있었다. 모금함 앞에는 수십명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현금이 든 봉투가 쉼 없이 상자로 들어갔다. 봉투마다 이름과 직책이 꼭 적혀있었다.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한복을 차려입은 이 시장 부부와 악수를 한 뒤 2·3층 객석에 앉았다.

이 시장이 쓴 책은 정가 1만5000원이다. 하지만 제 값에 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 참석자는 “40만원이면 몇 권이죠”라고 관계자에게 물어 본 뒤 두툼한 봉투 4개를 모금함에 넣었다. 그는 책 10여 권을 가져갔다. 다른 참석자 2명은 흰 봉투 다발을 내고 종이 가방에 든 책 몇권을 받아 급히 행사장을 떠났다.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산문화회관. 최종권 기자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산문화회관. 최종권 기자

행사 관계자는 “대부분 현금을 봉투에 넣어 책 값을 지불한다”며 “얼마를 냈는지 따로 물어보지 않지만 봉투가 너무 두껍다 싶으면 책을 몇 권 더 드린다”고 말했다.석모(64)씨는 “시장과 친분이 있으면 10만원, 보통은 5만원을 한다”며 “순수하게 시장을 지지해 행사장에 온 것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얼마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1층 로비에는 ‘이완섭 갤러리’란 이름으로 전시관이 마련됐다. 이 시장의 어린시절 사진과 행사 참석 사진, 그림이 걸려있었다. 출판기념회 성격과는 무관해 보였다.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이 시장의 지방선거 출정식 같았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과 같은 당 이인제 고문, 성일종 국회의원(한국당 충남도당위원장), 김지철 충남교육감, 이석화 청양군수 등 주요 인사와 시의원·농민단체·농협 임직원 등 600여 명이 강당 안을 꽉 채웠다. 농협 배지를 단 조합장과 임직원, 이 시장의 동문회 일행도 참석했다. 책만 받고 행사장을 떠난 사람까지 더하면 1000여 명 이상 찾았다.

이완섭 서산시장이 출판기념회에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이완섭 서산시장이 출판기념회에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이완섭 시장 출판기념회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모금함. 최종권 기자

이완섭 시장 출판기념회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모금함. 최종권 기자

축사는 이 시장의 성품과 업적 등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성 의원은 “지역과 국가를 바꾸는데 리더가 중요하다”며 “지성·감성·덕성을 다 갖춘 이완섭 시장이야 말로 최고 시장 아닙니까”라며 청중에 박수를 유도했다. 그는 책 제목을 인용하면서 “해 뜨고 꾳피는 서산 다음에는 뭐가 있겠냐.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라며 “이 시장이 일을 열심히 해서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잘 열릴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보태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애둘러 말했지만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을 도와달란 뜻이다.

홍 사무총장은 “책을 쓴 다는 것은 자랑스런 일을 내놓을 만큼 업적이 있어야 한다”며 “책을 쓰신 이 시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치켜 세웠다. 그는 이어 “사람을 시켜서 책을 한 50권 팔아줬다”며 “가실 때 꼭 책 한 권씩을 사서 가야 한다. 그냥 오시는 거는 별로 그렇습니다”라며 책 구매를 독려하는 말도 했다.

김춘수의 시 ‘꽃’을 인용한 이 고문은 “서산 시민이 이완섭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이완섭이 서산 시민에게 안겨 꽃이 되었다”며 “이제 2번을 불러주신 것 같다. 오늘은 3번째 부름을 고대하고 있는 이완섭 시장과 기꺼이 그를 불러주시려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고 했다. 3선에 도전하는 이 시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에서 방청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에서 방청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 행사장 1층에 설치된 전시관. 이 시장의 사진과 그림이 걸려있다. 최종권 기자

이완섭 서산시장 출판기념회 행사장 1층에 설치된 전시관. 이 시장의 사진과 그림이 걸려있다. 최종권 기자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무료로 나눠주거나 정가보다 싸게 팔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반면 책 값에 대한 상한선이 없어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서산=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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