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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뿌리내린 「2세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를 2세 경영인들의 발아기라고 한다면 80년대 중반이후를 성숙기라 부를수 있다.
나이로 따져도 대부분이 30대 초반의 약관이던 것이 이젠 30대후반∼40대중반으로 변했다. 이들 개인으로 봐서는 그만큼 성숙해진 셈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재계가 오히려 패기왕성해진 셈이다.
재계의 핵심 기업 경영주의 면면을 봐도 이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2세들이다. 마지막까지 창업주경영시대를 리드해온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이 작년말 타계하고 이건희씨가 승계한것은 한국 재계의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일단락 지은 것이었다.
그동안 2세 경영인들의 위상이 그렇게 달라질수가 없다. 불과 5∼6년전만 해도 어느날갑자기 선대로부터 물려받고 전전긍긍하던 젊은 2세들이었지만 이젠 그게 아니다. 어느새 한국 재계의 안방을 당당하게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하루가 다르게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2세시대가 완전히 뿌리를 내린것이다.
전경련만해도 어제의 모습이 아니다.
단적으로 창업 세대의 간판스타로 10년동안 재계를 이끌어 왔던 정주영회장의 용퇴는 이미 실세로 등장한 2세들의 전면 부상을 의미했다.
창업2세의 선두격인 패자경럭키금성회장(62)이 「재계총리」직을 승계했고 김우중경방회장(63), 박성용금호회장(56), 이건희삼성회장(46), 조석내효성회장(52) 등 2세 기업인들이 대거 전경련 회장단에 합류했다.
이밖에도 회장단에는 못끼었으나 막강한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더 젊은 경영인들이 적지 않다. 쌍룡의 김석원회장(42)을 비롯해 동부그룹의 김준기회장(43), 한국화약의 김승연회장(37), 한일합섬의 김중원회장(40), 동아건설의 최원석회장(44), 삼미그룹의 김현철회장(38), 충남방직의 이준호사장(37), 해태그룹의 박건배회장(40), 삼환기업의 최용권사장(37)등….
얼마전만해도 사실 기업의 크기에 상관없이 전경련회의등 공식석상에서 이들의 입김이나 영향력은 거론할바조차 되지 못했다. 아무리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기업인이라해도 원로로서의 「행세」가 가능했고, 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이쪽은 나이도 어리고 저쪽은 선대의 친구라는 개인적 관계 속에서 재계를 끌어나가는 주류는 비즈니스 이전의, 다분히 유교적 질서에 따라 움직여 왔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처신하기에 제일 곤란한 것은 혹시 내 주장을 펴다가 재계어른들로부터 「저놈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이 달라지지 않았읍니까. 돈많고 사업 잘해 이익 많이 남기는 기업을 아무리 겸손을 떤다해도 누가 무시할수 있겠습니까. 재계의 위계질서도 결국은 현실이니까요.』(S그룹 K회장)
물론 2세 경영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처럼 자신만만한 것은 아니다. 삼호나 정우개발·청보식품처럼 실패의 대부분의 2세들, 비교적 재계의 주목거리가 되었던 2세들은 거의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우리 재계의 특징으로 기록될만하다.
삼미의 김두철회장은 그동안 가장 진땀을 흘린 2세. 앞장서서 사업을 벌여나갔던 해운이 수렁에 빠지면서 한때 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었다. 결국 부채청산을 위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의 상깅이나 다름없는 삼일로빌딩까지 처분해야 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해운에서손을 털어버리고 특수강사업에 전념하겠다는 결단이 맞아 떨어져 삼미의 새 진로구축을 힘겹게 성공시켰다.
또 다른 케이스로는 한국화약의 김승연회장을 꼽을수 있다. 그는 취임 초부터 다른 2세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나갔다. 처음 얼마동안은 수성에 전념하고 수습하는 자세로 조용히 지내는게 보통인데 비해 그는 시작부터 과감한 경영을 폈다.
사장단에 전직장관을 비롯, 유명인사들을 대거 영입한 그는 새로운 스타일로 기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는 주저없이 한양화학을 인수한데 이어 철도청의 홍익회, 경인에너지의 내국화, 명성 및 한양유통 인수등을 잇달아 치러내면서 「탈화약」을 대단한 속도로 실현시켜 보였다.
쌍룡의 김석원회장은 정치를 겸업으로 했던 선대 김성곤회장보다 사업 수완면에서 더 낫다는 평을 듣는 2세로 꼽힌다. 전혀 준비없이 쌍룡을 물려 받았고, 더구나 선대가 자금난 속에서 벌여놓았던 양회의 시설개체와 정유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을뿐만 아니라 사업자체를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까지 확장시켜 놓았다.
아뭏든 대개의 2세들은 이제 수성의 차원에 머물러 있질 않다. 그들 스스로의 사업의 장을 벌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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