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중 대사 '오만한'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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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는 중국과 미국 관계를 언급하며 한 술 더 떠 "중국과 미국은 대국(大國)이다. 중.미 사이에 대립하고 충돌하면 세계가 불안정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중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며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추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내정 간섭성 훈수까지 했다.

닝 대사의 말마따나 중국은 대국이다. 매일 4만40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매년 늘어나는 인구만 1600만 명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2조 달러인 경제 대국이며 '세계의 공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국'에서 파견한 대사의 입에서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훈수를 듣는 기분은 유쾌하지 못했다.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거침없는 닝 대사의 발언은 이어졌다. 중국 어선의 서해상 불법 어로행위에 대해 "중국 중앙정부가 방치만 하고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해당 지역의 어민만 수만 명인데 모두 집에 가둬놓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고구려사 왜곡 논란에 대해선 "지금 살고 있는 누구도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만큼 책의 내용이나 학자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특히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말 한마디는 두 나라 관계를 좌우할 수도 있다. 외교관을 지낸 영국 시인 헨리 와튼 경은 '대사란 자국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라고 외국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닝 대사의 말에선 거짓말로라도 한국 국민의 심기를 헤아리려는 배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중 38%는 10년 후 안보의 최대 위협국으로 중국을 꼽았다. 닝 대사의 발언은 중국 위협론의 실체를 보는 듯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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