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열려라 공부] 학생 스스로 묻고 정보 찾아 답 얻어… 창의적 사고 키우는 ‘PBL 수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학생·교사 역할 바뀌다 
아이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길 원한다면 구성주의 접근법을 21세기 학습법으로 채택해야 합니다. 단순 지식 축적은 컴퓨터도 할 수 있죠. ‘우리가 잘하는 건 무엇이고 못하는 건 뭐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지?’라는 고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인지교육학 교수이자 '다중지능'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했다. 우리 교육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다. 올해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교육부 개정교육과정은 ‘통합·융합 교육, 발표, 토론’ 등을 강조하며 과정 중심 평가를 시작했다. 학생 스스로가 묻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PBL(Project Based Learning) 수업이 필요한 이유다.

교사는 수업 과제만 제시 #학생끼리 토론·발표 통해 #문제 풀어가는 과정 중시

지식 암기식 수업에서 창의적 사고를 키우는 수업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올해 고교를 입학하는 학생들은 새롭게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을 배우게 된다.

2015 개정교육과정 배울 고1

지난 20일 서울 대치동 청담어학원 마스터반 학생들이 토론으로 진행되는 PBL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대치동 청담어학원 마스터반 학생들이 토론으로 진행되는 PBL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등 문·이과 공통 과목이 신설되고, 교과별 핵심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과목을 학습한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자유학기제를 도입한 중학교에서 이미 시작했다. 중간·기말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학기에 학생들은 체험 중심의 활동과 함께 진로를 탐색한다. 오지선다형 지필시험 외에 활동과 탐구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는 수행평가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정교육과정을 발표하며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은 “우리나라 교육은 국제학업성취도 평가는 최상위 수준이지만 과도한 학습 부담과 문제풀이 수업 등으로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와 행복감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배움을 즐길 수 있는 교육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교육은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교육 전문가들은 다양한 교수법 중에서도 프로젝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PBL 수업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이 수업의 가장 큰 특징은 해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파게티 면을 이용해 수수깡을 가장 높게 쌓아 올리려면?’ ‘소설을 읽고 큰 사건들을 정리해 다시 재구성한다면?’ ‘학교 식당을 새롭게 디자인한다면?’ 등의 문제가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주어지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각자 다른 답이 나오는 수업이다.

교실 안에서 학생과 교사의 역할이 바뀌는 것 역시 큰 특징이다. 전통 교육에서는 교사들이 교단 앞에서 빽빽한 필기와 함께 지식 전달하기에 바빴다면 PBL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활동하는 아이들 뒤에서 문제가 있을 때만 나서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수업 과제는 교사가 내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형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에 대한 의사와 선택권은 대부분 학생에게 있다. 이미 PBL 수업이 활발한 뉴질랜드·미국의 해외 교육 현장을 찾으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학생들의 “Thank you for listening(들어줘서 고마워)”이라는 점만 봐도 수업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토론과 발표를 통해 아이들은 입과 귀, 손짓을 모두 사용하며 수업에 참여한다. 나영성 초지고 영어교사는 “전통 교육은 이미 정해진 답을 짧은 시간 내에 학습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PBL은 학생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하고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관련 정보를 자유롭게 찾아 익히는 과정 중심의 배움”이라고 설명했다.

수업 형태는 다양하다. 가상의 이야기를 주고 학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 더욱 깊이 사고할 수 있게 하거나 문제 해결 관련 내용을 나열하듯이 종이에 써 시각화 브레인스토밍을 훈련하기도 한다. 또 책을 미리 읽어오고 관련 내용을 PPT로 정리해 발표하거나 역할극·뮤지컬을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만 놀이를 즐기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한다.

이 같은 교육은 실제 국내 의과대학에서 ‘문제기반학습’이라는 ‘PBL(Problem Based Learning)’ 명칭으로 먼저 시작됐다. 단편적인 생물 의학 지식의 암기로는 실제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개발됐다. 대학에서는 가상 환자의 증상을 보여주고 ‘이 환자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증상들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진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만 정리해 본다면’ 등의 문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다각도의 사고 과정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과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적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사교육 현장에서도 이미 PBL 수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 진행하는 PBL 수업부터 코딩을 익히는 PBL 수업도 있다. 이 중 청담어학원은 디자인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융합적 ‘디자인 사고’ 방식을 바탕으로 PBL 수업을 진행하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태블릿PC를 사용하며 프로젝트를 해결해 나간다. 문학 책을 읽고 그 안의 내용을 소재로 PPT를 만들거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연극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 관심 주제에 대해 조사하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한 가지 주제를 두고 깊이 있게 분석한 후 찬반 입장으로 토론한다. 학생들은 억지로 문법이나 영어 단어를 익힐 필요가 없다. 주어진 과제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기술을 배운다. 박지현 청담어학원 대치브랜치 원장은 “대학과 기업에서 찾는 인재는 깊이 있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며 “창의적 사고력은 저절로 생기거나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BL 수업 도입한 교육업체

April어학원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시각적 사고 정리를 연습하고 있다.

April어학원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시각적 사고 정리를 연습하고 있다.

7~13세 아이를 대상으로 PBL 수업을 진행하는 April어학원도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방법의 수업을 경험한다. 마음속에 지도를 그리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마인드맵’, 여러 친구와 토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베스트 초이스’, 상황을 육하원칙으로 정리해보는 ‘5W1H’, 목표 달성을 위해 세부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우는 ‘만다라트’, 문제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가며 해결책을 찾는 ‘WHY 다이어그램’, 거꾸로 생각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역브레인 스토밍’ 등의 활동을 하며 사고력을 기르게 된다. April어학원 청담본원 오주희 원장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채널로 배경지식을 접하고 질문을 통해 사고의 관점을 넓히도록 유도하는 창의사고 프로젝트 ‘CTP(Creative Thinking Project)’ 활동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며 “영어 실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며 함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씨큐브코딩에서 자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 학생이 씨큐브코딩에서 자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PBL 수업 방식으로 코딩을 알려주는 곳으로는 씨큐브코딩을 꼽을 수 있다. 보통 코딩 학원에서는 교사가 이끄는 대로 학생들이 코딩 기술을 습득하는 수준이라면 이곳에서는 기술을 바탕으로 과제를 받고 학생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수업은 정규 수업과 자유 선택 활동으로 나눠 진행된다. 정규 수업은 교사가 학생에게 발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발문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사고를 확장, 발전시켜 나가게 한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한 것을 설계도에 표현하면 교사는 이것이 프로그램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완성된 결과물을 보고 다른 학생과 토론하며 생각을 주고받는다. 단계별로 기본적인 명령과 프로그래밍, 아두이노와 입·출력 핀 등 기초 학습으로 호기심을 키우고, 학원에서 자체 개발한 교수법으로 C언어를 습득한다.

상상 프로젝트’라는 자유 선택 활동도 진행된다. 학생들은 3D프린터와 레이저 커터 등의 첨단 디지털 장비가 갖춰진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다. 씨큐브코딩 김수민 본부장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동 프로젝트를 하거나 자기가 상상한 것을 직접 제작해봄으로써 컴퓨팅 사고력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PBL 수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를 키우는 데 적합한 교육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모둠을 구성해 여럿이 협력해 문제를 푸는 수업의 경우 한 반에 20~30명 있는 학교 교실 환경에서는 모두에게 적합한 수준의 과제를 제시하기 어렵다. 같은 과제여도 학생별로 수준 차이가 크다면 원하는 교육 효과를 얻기 힘들다. 또한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수업인 만큼 기본적인 지식과 관련 개념이 갖춰지지 않은 학생들은 확장된 사고를 하기에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처음 PBL 수업을 듣는 학생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글=라예진 기자(rayejin@joongan.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