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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오만과 편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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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주연: 키라 나이틀리.매튜 맥파든
장르:드라마
등급:12세
홈페이지:(www.prideandprejudice.co.kr)

20자 평:그림책을 보는 듯한,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

영화에서는 첫인상만으로 사랑을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 심지어 길을 가다 눈빛이 스치기만 했는데 바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짧은 2시간 내외에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중간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첫인상은 중요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때로는 첫인상이 아주 나쁘더라도 여러 번 만나 대화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이 좋아지기도 한다.

'오만과 편견'(24일 개봉)은 오만한 귀족 청년과 편견에 사로잡힌 중산층 여성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들은 다른 많은 영화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대신 시간을 두고 조금씩 알아가며 사랑을 키운다.

원작은 19세기 영국의 인기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다. 배경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영국이지만 영화 속 사랑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통하는 데가 있다. 영화는 원작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연한 파스텔 색조의 화면과 낭만적인 음악으로 소설에는 없는 '영화의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 봉건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 영국의 사회상도 잘 표현한다.

주인공은 베넷 집안의 다섯 딸 중 둘째 리지(키라 나이틀리)다. 아버지는 시골 지주지만 집안 살림은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다. 당시 영국의 불합리한 상속제도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하면 전 재산을 먼 친척인 시골 목사에게 넘기고 가족들은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사정으로 어머니는 딸들을 부잣집에 시집 보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어느 날 젊고 잘생긴 부잣집 청년 둘이 리지의 마을로 찾아온다. 그중 빙리는 다정다감하고 친절하지만 다시(매튜 맥파든)는 내성적이고 차가운 성격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리지에게 다시의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빙리는 리지의 언니 제인에게 호감을 갖고 청혼하려 하지만 다시가 방해해 무산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리지는 더욱 다시가 싫어진다.

그러던 중 놀랍게도 다시가 리지에게 청혼한다. 외모도 아름답고 성격도 활달한 리지의 매력에 끌린 것이다. 귀족 집안의 자제인 다시는 리지가 자신의 청혼에 감지덕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리지는 그 자리에서 딱 잘라 거절한다. 이미 다시가 언니의 결혼을 방해한 사실을 알고 있는 데다 다른 몹쓸 짓도 했다는 험담을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는 힘껏, 그러나 숨어서 리지의 집안을 도와준다. 리지는 점차 다시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다시에 대한 오해를 푼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서로의 진심이 통하면서 사랑이 이뤄진다.

개성 있는 캐릭터의 조연들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천박하다는 욕을 먹는 줄도 모르고 딸들을 시집보내려 극성을 떠는 리지의 어머니, 혼자 집안 망신을 다 시킨 주제에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뻔뻔한 동생 리디아, 귀족 부인에게 잘 보여 자리를 보전하려고 전전긍긍하는 위선적인 시골 목사, 귀족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을 한없이 깔보는 노부인 등이다. 이처럼 영화 속에는 겉으로 한껏 잘난 체하지만 속으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가득하다.

예쁘게 색칠한 그림 같은 시골 풍경도 괜찮은 구경거리다. 소설에서는 밋밋하게 표현한 부분이 영화에서는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는 낭만주의 성향을 지닌 브론테 자매의 소설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돌과 풀이 무성한 황량한 들판에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리지의 모습은 소설 '폭풍의 언덕'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 영화도 한계는 있다. 신데렐라 같은 사랑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란 메시지는 있지만 결혼 후 생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현대 여성 못지 않게 자의식이 강한 리지가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원작자 오스틴으로선 자신의 경험에 비춰 리지의 선택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된다고 본 것일까.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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