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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한 '레디' 구령...한국인 스타터였단 것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25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오용석 단국대 빙상팀 감독. 강릉=김지한 기자

25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오용석 단국대 빙상팀 감독. 강릉=김지한 기자

 "고 투 더 스타트(Go to the start)! 레디(Ready)! 탕!"

평창올림픽 유일한 아시아인 스타터 오용석 단국대 감독 #2002년부터 스타터 심판, 2회 연속 올림픽 빙속 총성 울려 #"내 총성에 모든 사람이 쉿! 최고 스타트 기록에 짜릿해"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과 결승에서 낮으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 링크에 울러퍼졌다. 이 목소리에 모두가 숨죽였다. 그리고 스타트 총성이 울리는 순간 선수들은 빠르게 출발선을 박차고 나가고 관중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스타터 심판을 이날 맡은 사람, 오용석(49) 단국대 빙상부 감독이다.

오 감독은 평창올림픽에 나선 스피드스케이팅 스타터 심판 4명 중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당당히 뽑혔다. 지난 2014년 소치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겨울올림픽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오 감독은 여자 매스스타트 뿐 아니라 여자 500m, 여자 1500m 경기에서도 스타트 총성을 울렸다. 오 감독은 "두 번이나 올림픽 스타터로 나선 건 가문의 영광이다. 한 번 올림픽을 경험했기 때문에 '설마 한 번 더 할까' 했는데 또 지명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4명 중 아시아인으론 유일하게 뽑힌 오용석 단국대 감독(왼쪽). 강릉=김지한 기자

평창올림픽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4명 중 아시아인으론 유일하게 뽑힌 오용석 단국대 감독(왼쪽). 강릉=김지한 기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스타트는 실격 여부를 통해 레이스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오 감독은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과 함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스타터 심판으로 한국 빙상을 빛냈다. 2002년 아시아선수권을 통해 스타터 심판에 입문한 오 감독은 아시아선수권, 주니어 세계선수권, 종목별 세계선수권 등 다양한 국제 공인 대회를 맡으면서 얻은 신뢰로 '대쪽 스타터'로 주목받아왔다. 오 감독은 "한국 선수가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세 차례 우승(김유림, 노선영, 서정수)했을 때 모두 내가 스타터를 맡았다. 그러나 한국 선수가 나선다 해서 봐주는 건 없다. 원칙대로 쏘고, 정확하게 보다 보니까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ISU 공인 스타터가 되기 위해선 국내 스타터로 활동하면서 각 국 빙상연맹의 추천을 받아 ISU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인터내셔널 스타터 활동을 해야 한다.이어 각종 국제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평가위원회의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한다. 오 감독은 "스타터는 선수의 기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실수했다가 공항에서도 해당 스타터를 알아보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스타터를 하면서도 매년 엄격한 평가를 거쳐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큰 대회에 쏠 사람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저음의 구령 목소리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장 관람객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녹음한 목소리 아니냐"고 하지만 오 감독이 직접 구령을 외친다. 그는 "의도적으로 더 낮은 목소리로 부른다. 부담갖지 말고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 스타트를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이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스타트에도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빙판에 들어서 총성을 울려 달리는데까지 약 20초 걸린다. 심호흡하고 출발자세를 기다리는데 15초가 걸리고, 출발선에서 자세를 낮춰 잡는데 4초가 소요된다. 그때 '레디'를 외치고 1초 뒤에 총을 쏜다"고 설명했다. 그 전에 출발하면 부정출발로 다시 뛰거나 누적되는 경우 실격 처리된다.

오용석 단국대 빙상팀 감독. 강릉=김지한 기자

오용석 단국대 빙상팀 감독. 강릉=김지한 기자

지난 18일 '빙속 여제' 이상화(스포츠토토)가 출전했을 때도 오 감독이 총성을 울렸다. 오 감독은 "상화가 당시 10초20으로 가장 빠른 스타트 기록을 냈을 떄 매우 기뻤다. 스타터로선 자신의 총성에 최고의 스타트 기록을 낼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수많은 관중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 수억명이 내가 내는 총성과 호각소리에 집중한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매우 좋다. 내 구령에 긴장하고 지켜보는 것 아닌가. 그만큼 책임감도 더 생긴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공교롭게 이상화와 김보름 등 한국 여자 선수 2명의 메달 경기에 스타터로 나섰다. 24일을 끝으로 평창올림픽 일정을 마친 오 감독은 바람도 드러냈다. 그는 "아무리 준비를 잘 하고 나오려한다 해도 스타터는 전문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져 더 많은 한국인 국제 심판이 양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릉=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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