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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영화? 뮤비? 드라마? 15초가 뇌리에 팍 … 광고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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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CGV 극장. 영화배우 김주혁이 호주 신인배우 사라 팝, 박광현 감독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여기까지는 영화 시사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그러나 이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영화 제작자가 아닌 광고주다. 영화시사회가 아닌 광고시사회다. 자동차 추격신이 돋보이는 기아차 로체 광고의 풀버전(10분 분량)은 이렇게 첫선을 보였다. 영화처럼 만든 광고 '애드 무비'다.

광고가 TV화면 대신 시사회 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애니콜 광고 '애니클럽'은 지난해 말 서울 청담동의 한 클럽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이 또한 뮤직비디오 같은 광고다.

광고 같지 않은 광고, 영화.드라마.뮤직비디오의 촬영기법을 빌려온 광고들이 늘고 있다. 상업적 메시지를 빼놓고 보면 하나의 예술장르처럼 느껴질 정도다.

기아차 로체 광고는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 'L'(김주혁 분)이 자신의 몸과 하나가 돼 반응하도록 설계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된다는 스토리. 자동차 추격신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스펙터클하고 속도감 있게 표현됐다. 제작비도 일반 자동차 광고의 세 배가 들었다.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박정미 부장은 "영상미.시나리오 등이 영화 못지않게 탄탄하다"고 말했다.

칭기즈칸이 등장하는 솔로몬저축은행 광고는 국내에서 방영됐던 몽골 드라마 '칭기즈칸'의 영상을 그대로 옮겨 담았다. 칭기즈칸에게서 열정을 빼면 한낱 양치기에 불과하다는 스토리의 광고를 찍기 위해 드라마 의상과 소품(1t 트럭 3대 분량)을 몽골에서 공수해왔다. 칭기즈칸과 장수들이 말 달리는 장면은 5월 말 방송예정인 SBS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의 무술감독 류현상씨가 맡았다. 회사 관계자는 "모델들의 분장도 몽골에서 공수된 재료로 5시간에 걸쳐 하는 등 철저한 고증을 했다"고 말했다.

KTF 월드컵 광고 '메가폰'편은 리얼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명동 한복판에서 메가폰을 들고 '우리 미칩시다!'를 외치는 내용이다. 모델이 카메라를 보고 연기하는 기존의 광고 촬영 기법과는 달리 청년은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각도에 숨겨놓은 16㎜ 카메라 8대가 돌발적인 청년의 행동에 의아해하는 행인들의 표정을 적나라하게 담아낼 뿐이다.

리바이스 엔지니어드진 광고 '아틀란티스' 편은 100% 수중촬영으로 제작됐다. '프리 투 무브(Free to Move)'라는 컨셉트를 강조하기 위해 모델들이 패션쇼 같은 예쁜 모습을 포기하고, 과감히 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3일간 진행된 수중촬영에서 모델들은 산소호흡기로 숨을 들이쉬며 연기를 했고, 물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몸을 와이어로 고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촬영된 수중신은 컴퓨터그래픽 작업으로 기포를 제거한 뒤 지상에서 찍은 도시장면과 합성됐다.

이렇게 광고 촬영기법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광고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15초라는 짧은 시간의 한계를 차별화된 영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광고대행사 웰콤의 장승은 팀장은 "영상 홍수 시대에 독특하고 완성도 높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 영화.드라마의 리얼리티 요소를 도입한 광고가 늘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은 장기적으로 광고의 장르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만들어지는 광고는 TV용 광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제한이 없고 완성도가 높은 인터넷 버전을 따로 만들어 광고 콘텐트 자체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제일기획의 김태해 국장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가보다 메시지를 어떻게 포장해서 보여줄 것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라며 "새롭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시청자들의 영상 소비행태가 광고촬영 기법의 진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현목 기자

자동차 애드무비 찍은 박광현 감독 … 즐거움 줄 수 있는 건 뭐든 찍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37.사진) 감독. CF.뮤직비디오.영화를 넘나드는 그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애드무비 '로체 아이덴티티'를 찍었다. 애드무비 시사회장에서 만난 그는 광고의 가장 큰 매력으로 '함축성'을 꼽았다.

-광고컨셉트가 '아이덴티티(정체성)'인데 본인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상 퍼포먼스라면 뭐든지 다하는 사람이다. 원래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직업으로 따지면 재미있는 이야기꾼이라고 할까."

-자동차 추격신이 나오는 영화 같은 광고를 처음 했는데 부담은 없었나.

"처음에는 자동차 광고라고 해서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광고 컨셉트인 '반응성'을 보여 달라는 광고주의 말에 '필이 꽂혀서' 광고를 찍게 됐다. 자동차 추격신을 찍은 경험보다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난 상상했고, 그것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영화와 다른 광고의 매력은.

"함축성이다. 광고는 영화와 달리 앞뒤 얘기를 안 해도 이를 연상케 하는 힘이 있다. 광고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마케팅 활동에 연결돼 브랜드 이미지도 높인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고도의 심리 싸움이라는 점에서 광고는 매력 있는 장르다."

-이번 애드무비 촬영이 차기작(영화)에 영향을 미치는가.

"자동차 추격신은 감독이면 누구나 한 번쯤 하고 싶은 촬영이다. 후속 작에 자동차 추격신이 들어가진 않지만 영화감독으로서 소중한 경험이었다. 차기 작을 준비 중이며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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