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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항구대책 세우자|이규학(방재전문가·전 내무부 민방책 자문위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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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름이 다가온다.
여름은 만물이 생육하는 계절이지만 태풍·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태풍·홍수에서 보듯 자연재해는 순간에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 있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은 국가적 중대 과제다.
그러나 정작 자연재해에 대해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으며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기가 쉽다.
특히 우리의 경우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 비하면 「안전」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거의 없다시피 해 해마다 불의의 재난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 것인가.
세계에서 미국처럼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서부의 지진, 워싱턴주와 하와이주의 화산폭발, 대륙을 세로로 지르는 거대한 미시시피강의 범람에 따른 홍수, 대륙을 휩쓰는 회오리강풍, 폭풍을 동반한 해일현상, 대륙 전체를 덮는 안개, 빈발하는 산불 등 다양한 자연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연간 재산 피해액은 미국국민 총생산고의 0.00001%(4조원)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국민총생산고의 5%를 상회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미국이 재해 발생 빈도에 비해 재산피해가 이처럼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모든 도시계획 및 개발계획이 재해방지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모든 지상 및 지하건물을 설계, 시공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3백년은 견딜 수 있게 방재 안전요소를 충분히 확보하고, 방재 안전기준에 따라 이들 설비에 대한 보수·유지·관리 등을 철저히 시행한다.
둘째, 재해안전에 대한 집행권한과 의무가 부여된 행정·민간차원의 방재 안전부서가 서로 유기적 관련을 갖고 체계적·능률적·지속적으로 방재활동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세째, 자연재해 방지를 위한 모든 시설물의 보수·유지·관리상태 및 비상시 대처방안 등이 전산화되어 있다.
네째, 각 도시의 92%, 각 산업조직의 98%가 재해예방 행동 시나리오를 갖추고 대피함으로써 유사시 피해를 극소화 시킬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를 보면 도시개발계획 때 이 같은 방재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개발을 서둘러왔기 때문에 폭우가 쏟아지면 새로운 개발지역에 산사태가 발생하고 공단지역이 침수하는 사태가 빈발한다.
서울 반포 지하상가·지하철 침수, 한강 배수문사고 등도 시설물 자체에 대한 방재안전팩터를 전혀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재해였다.
시설물의 설계·시공·보수·관리 및 작동 등 전 과정에서 방재안전팩터가 결여됐기 때문에 재해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화재가 발생했다하면 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 나라 건설부에는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재해방지업무를 전담하는 상설행정집행기구가 아니라 재해 발생시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하는 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에는 법적으로 재해방지 업무에 대한 명확한 권한·임무를 부여받은 행정부처도, 민간단체도 없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연방재해관리청(FEMA)을 두어 자연재해·전쟁재난 등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FEMA는 총괄국·소방교육훈련국·연방보험국·국가방재국·위기대처국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7개국 산하에 소방총무과·화재예방과·소방관건강안전과·소방자료과·보험과·보험지원과·보험정책기술분석 기술봉사과·위기관리과 등 42개 과가 자연재난·전쟁재난·원자력재난 등에 대한 예방·대처방안을 연구한다. 또 지속적인 방재시설의 유지·관리를 통해 방재팩터를 보다 확고히 확보하고 유사시에는 방재 시나리오를 활용, 긴급 대처하고 있다.
또 재산피해액은 보험을 통해 보상함으로써 신속한 피해복구를 돕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공공재해가 발생하면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재해대책자금·내무부의 지방비 등으로 보통 피해액의 50%를 보상비로 지급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의 부담도 50%나 돼 피해자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재해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도 자연재난에 따른 인재의 폭을 줄이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행정조직상 미흡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건설부 산하 중앙재해대책본부의 기능, 내무부의 민방위본부 기능, 재무부의 보험 관리기능 등을 효율적으로 통합조정하고 나아가서는 미국의 연방재해관리청과 같은 종합재난관리기능을 갖춘 기구를 하루 빨리 신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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