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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주민들이 중국인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7년의 마지막 날. 러시아의 크램린궁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해졌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부근 마을 리스트뱐카의 주민을 비롯한 5만 6000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였다. 이들의 요구는 단 하나. 중국인들의 바이칼호 부근 토지 거래를 금지시켜달라는 것이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바이칼호의 한 숙박 시설 [사진: 왕이신문]

중국인이 운영하는 바이칼호의 한 숙박 시설 [사진: 왕이신문]

러시아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청원서에는 “지금 이대로라면 5~10년 뒤에는 이 마을이 중국의 행정 구역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러시아 바이칼호의 아름다운 관광 도시 리스트뱐카. 이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을 땅의 10%가 중국인 소유 

러시아 시베리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호수 바이칼호. 이 호수는 예로부터 중국 역사서에서  "베이하이(北海, 북해)' 또는 '따저(大泽)'로 소개돼 왔다. 중국 예술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소무목양.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들렸으나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유배 된 소무가 양을 치던 곳이 바로 이 바이칼호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바이칼호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2시간 반(직항 노선)이다. 스토리와 지리적 이점을 두루 갖춘 바이칼호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지난 몇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덩달아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 시설, 음식점, 상점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바이칼 호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 [사진: 이매진 차이나]

바이칼 호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 [사진: 이매진 차이나]

지난 2017년 2월 러시아 관광 산업 연맹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2017년 겨울 시즌 바이칼호를 찾은 중국 여행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00% 넘게 증가했다. 2015~2016년에 이어 3년 연속 세자리수 성장이다.

중국의 사업가들이 바이칼호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리스트뱐카의 부동산 매입하고 나선 이유다. 러시아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리스트뱐카 전체 토지의 10% 이상을 중국인들이 매입했다. 특히 경치가 좋은 호수 부근의 노른 자위 땅은 이미 대부분 중국인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중국인들의 묻지마식 토지, 건물 매입에 리스트뱐카의 부동산 시장은 출렁이고 있다. 중국인 사업가들은 현지 시세를 훌쩍 넘는 금액으로 땅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 하락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부쩍 가까워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와 단체 비자 면제 정책 등이 중국인들의 '러시아 러쉬'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칼호에 중국어로 된 부동산 광고가 등장했다. [사진: 왕이신문]

바이칼호에 중국어로 된 부동산 광고가 등장했다. [사진: 왕이신문]

"최근 리스트뱐카 지역 내 중국어로 된 부동산 광고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인 사업가들은 구입한 땅에 중국인들을 위한 호텔이나, 고급 별장을 건설한다. 바이칼호 부근에 약 100여개의 크고 작은 숙박 시설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의 실제 소유주가 중국인이다" 중국의 외신 전문 매체 국제재선(国际在线)의 설명이다.

환경 생태계 파괴에 분노한 러시아인들

바이칼호 주민들이 중국의 부동산 매입에 분노한 이유는 단순히 그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인들의 무분별한 관광 인프라 개발로 인해 지역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9월 바이칼호에서 불과 15m 떨어진 곳에 건축된 한 숙박 시설이 해당 지방 법원에 고발됐다. 폐수를 호수에 방류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방 정부의 조사 결과 이 숙박시설의 소유주가 중국인임이 드러났다. 앞서 몇개월 전에는 바이칼호 부근의 주민들이 중국 기업들의 바이칼호 호수 물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

바이칼호에 중국어로 된 부동산 광고가 등장했다. [사진: 왕이신문]

바이칼호에 중국어로 된 부동산 광고가 등장했다. [사진: 왕이신문]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다수의 중국인 사업자들이 개인 거주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한 후 암암리에 숙박 시설을 만들어 영리 활동에 나서고 있다. 또한 현지인의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대리구매'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관련 민원이 늘어나자, 리스트뱐카가 속해 있는 이르쿠츠크 주 정부는 지난 2018년 1월부터 중국인들이 소유한 바이칼 호 부근 토지에 대한 불법 용도 변경 집중 단속에 들어간 상태다.

바이칼호 부근에 건설 중인 숙박시설 [사진: 왕이신문]

바이칼호 부근에 건설 중인 숙박시설 [사진: 왕이신문]

"일부 중국인들이 우리의 땅을 사들인 후 중장비들을 들여와 산을 깎고 토지를 훼손하고 있다. 지난 2500만년 보존돼 온 바이칼호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이곳 저곳에 대형 호텔을 만들고 있지만 등록은 개인 거주로 되어 있어 제대로 세금도 내지 않는다" 바이칼호 부근 주민들이 작성, 공개된 성명에 담긴 내용이다.

리스트뱐카에 장기간 거주중인 한 중국인은 "성수기때는 현지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진다. 중국 여행사들의 경쟁적으로 관광객들을 유치해 오면서,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현지 주민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경제 발전 VS 생태계 보존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난감해진 것은 러시아 정부다. 급격히 증가하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 인프라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에 손을 내민게 바로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6월 러시아 동부에 있는 부랴티야 공화국 행정부는 "더 많은 중국 기업들이 바이칼호 지역 관광시설 개발에 투자하길 희망한다"며 중국 자본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리고 2016년 10월 러시아의 바이칼 호 지역 부동산 개발 기업 빅바이칼은 중국 기업과 주변 지역 여행 인프라 시설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중국 기업은 이를 위해 11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돈으로 약 12조원이다. 숙박 시설은 물론 주변 관광 도로, 관광지 개발을 위한 포괄적 프로젝트다.

빅바이칼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지역 사회 전반의 경제 성장을 견인 할 수 있는 기초 인프라를 만드는게 이번 프로젝트의 주요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리스트뱐카가 속해 있는 이르쿠츠크 주 정부는 현재 약 20여개의 외자 합작 관광 인프라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에 중국 자본이 들어와 있다. 중국인들의 바이칼호 부근 부동산 사재기 관련 대책에 미온적일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바이칼호 부근은 빼어난 관광자원과 비교해 열악한 관광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 자본의 도움으로 일자리와 세수가 늘고 지역 경제 전반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중국 관광객 자체가 아닌 환경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갑작스러운 변화다. 이에 알맞는 소통과 정책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중국의 러시아 전문 칼럼니시트 리샤오펑의 진단이다.

차이나랩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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