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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 2명, 리비아 땅 밟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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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평화단체 '브레이킹 디 아이스'(Breaking the Ice)가 주관하는 '평화의 캐러밴 사하라사막 횡단'탐험대는 21일 이집트 북부 지중해 연안 마르사 마트루흐에서 리비아 입국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탐험대가 여기서 200km 서쪽에 있는 살룸 국경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0명의 대원과 행사 주최 측이 아직까지 리비아 입국 비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일 국경까지 이동해 현장에서 비자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들이 입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비아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일행 중 이스라엘인 2명이 특히 문제다. 이스라엘 공군 F-4전투기 조종사로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임무수행 중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다 시리아군에 포로가 됐던 길 포길과 팔레스타인인의 버스 자폭테러로 어머니를 잃은 갈리트 오웬의 입국은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리비아와 이스라엘은 국교도 없을뿐더러 적대국가다. 리비아 국가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가장 강력히 비난해 온 아랍 지도자 중 한 명이다.

포길은 레바논 전쟁 등 아랍권과의 전투에 수없이 참여한 공군 조종사다. 리비아 정부도 국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평화의 행진'을 벌이는 이들을 거부할 경우 현재 개방노선을 걷고 있는 리비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리비아 정부가 이들의 입국을 받아준다면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라고 '브레이킹 디 아이스' 관계자도 말했다. 이스라엘 여권을 가지고 리비아 땅을 밟은 최초의 유대인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포길과 오웬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카다피 최고지도자와 함께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올리브 나무를 심는 것이 우리뿐만 아니라 이번 평화 캐러밴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조종사 포길이 올리브 가지를 들고 초조히 기다리는 가운데 공중에서는 이집트 공군의 소련제 미그-21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잠시 지나는 전투기보다는 수백 년을 사는 올리브를 나는 선택했다"고 포길은 말했다.

이달 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출발한 '평화의 캐러밴'은 현재까지 행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라말라와 요르단을 거쳐 이집트까지는 걷고, 낙타.소방차를 타고 무사히 이동했다. 하지만 카이로 남서부 350km 지점의 바하리야에서 서부 사하라로 진입할 즈음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군사지역이라 이집트.리비아 국경 접근이 금지됐다. 할 수 없이 이들은 기수를 북으로 돌렸다. 낡은 소방차를 타고 600여km를 달려 지중해 연안 마르사 마트루흐에 20일 도착했다.

이번 평화 캐러밴에는 미국인 2명, 이스라엘인 2명, 팔레스타인인 2명, 이란인, 이라크인, 아프가니스탄인, 우크라이나인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모두 테러.전쟁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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