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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이창호 9단의 파격적인 헤딩, 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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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국 하이라이트>
○ . 이창호 9단(한국) ● . 뤄시허 9단(중국)

수명은 길어지고 있지만 삶의 호흡은 짧아져만 간다. 축구 4강, 야구 4강처럼 극적인 한순간이 세상을 지배한다. 한순간이 중요하며 그 한순간을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바둑판의 수들도 더욱 사나워지고 승부도 빨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면1(36~44)=좌변이 광활하다. 많은 출혈과 투자 끝에 상하의 제방을 막고 이제 드디어 변의 어딘가에 착수할 차례다. A나 B도 가능하다고 한다. 백의 이창호 9단은 과연 어느 선에서 집을 지을까.

이창호 9단은 불과 3분여 만에 36, 38을 두었다. 좌변을 아예 두지 않은 것이다. 상대는 어차피 깊게 들어올 수 없다고 본 것일까(아니면 42의 선수 가치를 높게 친 것일까).

하지만 뤄시허(羅洗河) 9단은 39로 깊숙이 쳐들어왔다. 노타임이다. 이 9단은 이 강수를 예상치 못한 듯 장고에 빠져든다. 그리고 6분여 만에 44로 격렬하게 헤딩해 갔다. 관전자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36, 38에 이어 이창호 9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를 또 두었다.

오랜 세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해 왔고 그것으로 세상의 온갖 빠른 것들을 제압해온 이창호 9단이었다.

그의 느릿한 호흡 속엔 44와 같은 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 B로 느릿하게 씌우고 흑C엔 D로 쫓는 방법이 이창호답다. 무엇보다 44는 "상대의 약한 돌에 붙이지 마라"는 격언을 무시하고 있다.

장면2(45~49)=결과는 좋지 않았다. 뤄시허는 45~49까지 백의 철옹성 속에서 쉽게 둥지를 꾸민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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