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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다짐 불사' 러-美 아이스하키, 미·소 냉전시대 만큼 치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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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7일 평창올림픽 남자아이스하키 러시아 출신 올림픽선수(OAR)-미국의 경기가 열린 강릉하키센터. 분위기는 마치 검투사들이 목숨걸고 결투를 벌이는 콜로세움 같았다.

양팀 선수들은 경기 내내 보디체크를 불사했다. 2피리어드 막판 양팀 선수가 주먹다짐해 한명씩 마이너 페널티(2분간 퇴장)을 받았다. 골문 앞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헬맷이 벗겨지는건 다반사였다. 심판들은 쏜살같이 달려가 양팀 선수들을 떼어놓느라 진땀을 뺐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만 관중석이 가득 채워진 경기장에서는 장외신경전도 치열했다. 빨강색 유니폼을 입은 러시아 팬들은 "러시아"를 외쳤다. 그러면 곧바로 파랑색 유니폼을 입은 미국팬들이 "USA"를 외쳤다. 심판의 휘슬이 잘 안들릴 정도였다.

17일 러시아 출신 올림픽선수와 미국의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러시아를 응원하는 미녀 응원단. [강릉=박린 기자]

17일 러시아 출신 올림픽선수와 미국의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러시아를 응원하는 미녀 응원단. [강릉=박린 기자]

러시아 미녀응원단은 전통복장을 입고 얼굴에 트리콜로르(러시아 3색기) 페이스 페인팅을 했다. 러시아 팬들은 러시아 상징인 불곰이 그려진 깃발과 'red machine(붉은 기계)'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었다. 러시아 팬 로만은 "하키하면 러시아다. 미국은 우리의 상대가 안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미국 팬들이 열띈 응원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미국 팬들이 열띈 응원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OAR의 골이 터질때마다 메리 홉킨의 'Those Were The Days'이 흘러나왔다. 원곡은 러시아 노래 '다로고이 들린노유(머나먼 길)'다. 경기장을 찾은 미국 팝가수 레이첼 플랫튼은 마이크를 잡고 "USA"를 외쳐며 응수했다. 미국팬들은 성조기를 흔들었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양팀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러시아-미국은 아이스하키계 유명한 라이벌이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서 대학생으로 구성된 미국이 올림픽 5연패에 도전하던 최강 소련에 4-3 역전승을 거뒀다. 미·소 냉전시대에 라이벌 소련을 꺾은 미국은 핀란드마저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빙판 위의 기적(Miracle On Ice)'으로 불리는 이 경기는 미국 언론들이 지금도 '역대 스포츠 100대 명장면' 중 1위로 꼽는 명승부다.

러시아는 2014 소치올림픽 조별리그에서 벌어진 오심논란으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에 승부치기 끝에 2-3으로 역전패했다. 러시아가 3피리어드에 골망을 흔들었지만, 심판은 미국 골대가 원위치에서 살짝 벗어났다며 노골을 선언했다.

미국 골리가 골대를 일부러 움직였는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러시아가 국가적 도핑적발로 평창올림픽에 개인자격으로만 출전했는데, 일부 러시아인들은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미국 조나단 그린웨이(오른쪽)와 OAR 파벨 닷숙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B조 예선 미국 대 OAR의 경기. 미국 조나단 그린웨이(오른쪽)와 OAR 파벨 닷숙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강릉=연합뉴스]

소련 시절 7차례 올림픽을 제패한 뒤 우승이 없는 러시아는 '소련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세계 2위리그인 러시아대륙간하키리그(KHL) 선수들로 멤버를 꾸렸다. OAR은 이날 4-0 완승을 거뒀다. NHL 출신 일리야 코발축(35·SKA)는 중거리 슬랩샷으로 원더골을 터트렸다.

반면 미국은 지난달 21일 별세한 짐 조핸슨 단장을 위해 '어게인 1980'을 이루겠다는 각오로 나섰다. 조핸슨은 20여년간 각급 대표팀 구성과 운영을 맡아오며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이 불참한 공백이 뼈아팠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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