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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고로 누적된 불만 폭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폴란드가 거의 주기적인 파업의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리고 있다. 정부의 경제개혁이 실효를 못 거둬 물가앙등과 생활 압박으로만 나타나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폭발이다.
지난달 25일 서부 비스고스터 시의 버스·트럭 운전사들에 의해 시작된 파업은 현재 전국으로 확산돼가고 있으며 국민적 기반을 갖고 균형자 역할을 해온 가톨릭 교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학생들의 동조시위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히 정부 당국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수습안을 내놓기보다는 자유 노조와의 협상을 거부하면서 폭동 진압 경찰로만 대처하고, 이에 맞선 노조 지도자들의 유혈 혁명경고 등 연쇄적 반응은 1950년대이래 있어온 유형을 되풀이하고 있다.
「야루겔스키」정권은 지난 82년 자유노조를 불법화시킨 대신 개인 영업의 장려, 기업의 자주성 존중, 자유가, 격제의 확대 등 경제개혁 조치를 단행했으나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관료층의 타성과 반발, 그리고 노동의 질에 관계없는 평등한 임금에 맛을 들인 근로자들의 반발로 인플레이션만 초래했을 뿐 기대했던 생산성 향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폴란드는 4백억 달러의 대외 채무, 서방 선진국보다 2배의 에너지 자원을 소모해야하는 낮은 생산성, 중공업에의 막대한 재정지원과 소비재 산업의 피폐에 따른 생활수준의 저하 등으로 고통을 받아왔지만 경제기반의 구조적 취약성과 대중적 정치기반의 미흡함으로 과감한 경제개혁 조치를 밀어붙이지 못한채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나「고르바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장이후「야루젤스키」정권은 동구권에 유행하다시피 하고 있는 소련류의 개혁정책을 다시 추진, 87년10월 제2의 개혁을 선언하며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 보조금 삭감 등 시장 경제의 도입을 서둘러왔다.
그리고 올 2월1일을 기해 개혁조치를 단행하면서 식료품과 유류 가격을 40∼1백% 인상했고 3월1일을 기해서는 탁아 요금을, 4월1일에는 가스전력 요금을 1백%, 석탄가격을 2백%씩 각각 인상한 것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고 다른 품목과의 균형가격을 실현하려는 이같은 정책은 시장 기능에 의한 가격 결정의 도입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물가체계의 개편은 정부 보조금에 의해 낮은 의식주 비용으로 생활해 온 폴란드 노동자들에게 큰 부담이었고 정부가 임금인상 가이드 라인으로 설정한 20%는 이미 45%가 넘는 물가상승률에 훨씬 밑도는 수준이었다.
물가인상 때마다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파업이 있었던 전례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번에도 근로자들은 70%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경제적 부진 외에 이번 폴란드 사태는 정부가 기업의 자율경영을 내세워 외견상 일체의 임금협상에 당사자로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악화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50년·70년·76년·80년의 파업사태와 달리 개혁과 개방·민주화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 재발한 이번 폴란드 병의 치유 여부는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다른 동구국가의 정책방향에도 많은 시사를 줄 것 같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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