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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한 그릇이 건강도 바꿔” 50년 된 ‘강남 된장’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 주택에서 서울시 장 담그기 전수자 조숙자 할머니가 간장을 소개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 주택에서 서울시 장 담그기 전수자 조숙자 할머니가 간장을 소개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의 한 현대식 단독주택. 새끼줄로 엮어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메주가 눈에 들어왔다. 마당 한쪽에는 눈 덮인 100여 개의 장독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항아리 뚜껑을 열자 옅은 검은색 물에 띄운 메주가 눈에 들어왔다. 간장이다. 이 집에 사는 조숙자(79) 할머니가 담근 간장이다.

60년대부터 서울 강남에서 장 담근 조숙자 할머니 #“콩·물·항아리·소금·정성 등 재료가 조화 이뤄야”

 서울시가 공인한 전통 장(醬) 담그기 전수자인 조 할머니는 “여기에 넣는 숯은 살균작용을 하고 대추는 단맛을, 참깨는 고소한 맛을 내. 빨간 고추를 넣는 이유는 악귀를 쫓기 위해서야”라고 설명했다.

조숙자 할머니 자택에 마련된 메주와 아궁이. 매년 11월 여기서 메주를 쑨다. 김민상 기자

조숙자 할머니 자택에 마련된 메주와 아궁이. 매년 11월 여기서 메주를 쑨다. 김민상 기자

 할머니는 1966년 서울 인근 염곡동에서 세곡동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에 세곡동 일대는 모두 초가집이었다. 식구 11명을 먹이기 위해 시어머니부터 장을 직접 담가왔다. “서울 강남에 된장을 기가 막히게 담그는 집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유명 호텔에도 장을 공급해줬다. 90년대 초반부터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농업기술센터 1층 강당에서 열린 강의에서도 100여 명이 몰려왔다. 30~40대 여성과 50~60대 남성들도 수강생으로 눈에 띄었다.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아파트에서 된장 만들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미리 장 담그기 비법을 배워 오기도 한다. 김인혜(38)씨는 “집밥을 요리해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이 취미”라며 “요리를 할수록 장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장을 맛있게 담그는 비법은 무엇일까. 조 할머니는 “콩·물·항아리·소금·정성 등 모든 재료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답했다. 재료별로 나눠 조 할머니의 장 담그기 비법을 정리해봤다.

조숙자 할머니 자택 지하에 마련된 강의실에 걸린 과거 활동 사진 액자. 김민상 기자

조숙자 할머니 자택 지하에 마련된 강의실에 걸린 과거 활동 사진 액자. 김민상 기자

①콩=조 할머니는 30년 전에는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자라난 콩을 사용했다. 오염이 덜 된 지역에서 자란 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백령도에서 나온 콩을 조 할머니가 대부분 들여오자 중간 유통 상인이 문제를 제기해 현재는 전남 함평에서 자란 콩을 사용한다. 함평은 며느리 친정이 있는 곳이다. 직접 함평 농가를 둘러 본 뒤에야 안심하고 사들이고 있다. 10월 햇콩이 나올 때 메주를 쑤고, 메주가 완성되는 음력 정월부터 3월 초 사이 장을 담글 수 있다. 메주에서 발효된 콩에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변하면서 감칠맛이 돈다. 조 할머니는 “콩이 밭에서 난 소고기라고 하지 않느냐. 3년 묵힌 장으로 만든 된장찌개 한 그릇이 몸을 건강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②소금=시집온 뒤부터 줄곧 거래하는 소금 상인이 있다. 조 할머니는 그를 ‘코주부 아저씨’라고 부른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전남 신안 소금 생산지까지 따라간 적도 있다. 조 할머니는 “예전엔 어디서 난 소금이라도 장을 담글 수 있었는데 요즘은 바다가 오염되고 중국산을 많이 섞어서 그런지 다른 소금은 사용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장을 담글 때 쓰는 소금도 6~7년 정도 묵혀 간수가 빠진 게 좋다.

③물=조 할머니에 따르면 세곡동 지하수는 조선시대 궁궐에 전달되던 물이다. 그만큼 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장을 담글 때 수돗물을 사용하기보다는 생수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이 좋다는 약수터에서 직접 길어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 할머니는 “장은 아기를 보살피듯이 정성스럽게 담가야 한다”고 말했다.

④항아리=된장을 담글 때 항아리 위에 유리 뚜껑이 덥힌다. 항아리 내부에는 밀폐된 공간이지만 때로는 곰팡이가 핀다. 항아리에 따라 된장 맛이 바뀌기도 한다. 조 할머니는 항아리가 숨을 쉬기 때문에 항아리마다 다른 된장이 나온다고 본다. 주택 마당보다 밀폐된 아파트에서 장이 잘 담가지지 않는 이유도 항아리에 있다. 호흡을 잘하는 항아리를 골라내기 위해서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보다는 손으로 빚은 것을 권한다.

 조 할머니의 장 담그기 비법은 며느리 선미순(49)씨가 이어받고 있다. 선씨는 “장비나 분위기는 현대식으로 조금씩 바뀔지 몰라도 장맛은 변함없이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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