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 규약위반 가입자 정리 선의의 피해자 구제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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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재형저축의 위규가입자 해약문제를 둘러싸고 취급은행과 가입자들간에 마찰이 일고있다.
최근 소비자연맹·시민의 모임등 소비자단체들에는 은행의 이번 해약조치가 무책임하고 부당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해약당사자들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당초 저소득근로자(월 급여60만원이하 생활자)의 재산형성을 돕고 국민저축률을 높인다는 취지로 76년 개설된 재형저축은 연25.9%(5년 만기기준)라는 최고 수익율로 현재 3백98만7천계좌(87년말)가 가입돼있는 인기 높은 저축상품.
그런데 정부보조기금 적자등의 문제로 최근 관계당국과 취급은행들이 무자격·한도 (월 급여액의 30%이내 최고 월12만원까지) 초과 가입자들의 색출·정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은행과 해당가입자간에 서로 책임을 따지는 분쟁이 빈발하고 있는 것.
회사원 정모씨(35)는 지난83년 3월 은행창구직원의 권유로 제일은행 구의동 지점에 목적금액 1천8백40만원의 5년 만기 재형저축에 가입해 월 20만원씩을 불입해왔다.
그런데 최근 만기가 되어 찾으려했더니 은행측은 정씨의 월 급여액이 35만5천원이므로 30%범위인 10만5천원이 불입한도라며 나머지 9만5천원은 재형저축으로 인정해줄 수 없으니 가계우대정기적금(연13%)으로 전환해 받으라고 요구했다.
재형저축과 가계우대적금의 금리차이 때문에 당초 예상액보다 1백71만6천원을 손해보게된 정씨가 억울함을 주장, 『은행에서 가입규정을 위반하도록 권유해놓고 이제 와서 문제된다며 가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따졌으나 은행측은『상급기관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
미혼인 홍모양(26)은 작년1월부터 주택은행 철산동지점에 구좌를 개설, 월10만원씩 재형저축을 부어오다 15회 차인 3월분을 마지막으로 최근 중도 해약하게 됐다.
봉급생활자가 아니라 자격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해주겠다는 창구직원의 말을 듣고 시작했던 것인데 최근 은행측이 이를 문제삼아 무자격 가입자라며 해약하든지 다른 일반저축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해온 때문.
지난8일 만기가 되어 은행에 저축액을 찾으러 나갔던 회사원 박모씨(40)도 은행측의 갑작스런 요구에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박씨는 회사권유로 지난 85년 4월부터 주택은행 자양동지점에 자신의 이름으로 재형저축계좌 2개를 만들어 12만원, 13만원씩 월25만원을 불입해왔다. 지난해 직장을 옮긴 뒤로는 자신이 직접 은행에 나가 같은 날 두 계좌를 불입해온 관계로 창구직원과도 이미 알고 지내온 터인데 이날 은행측은 난데없이(?) 가입규정을 위반한 금액은 무효라며 12만원 가입분에 대해서만 계약대로 5백66만원을 내주고 13만원짜리에 대해서는 가계우대정기적금으로 돌려놨으니 나중에 5백40만원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당초 목적액(1천1백87만원)보다 81만원을 적게 받게된 박씨가 『그 동안 뻔히 알면서 받아오다 사전에 아무런 통고없이 이런 불이익을 줄 수 있는가』고 항의했으나 『컴퓨터망에 수록이 안돼 그 동안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게 은행측 답변이었다.
이같은 고발사례에 대해 소비자단체관계자들은 『은행들이 예금유치경쟁으로 위규가입을 묵인 내지 방조해놓고 이제 와서 문제되니까 이를 이유로 계약을 이행치 않고 가입자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금융기관으로서의 공신력문제 뿐아니라 상도의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하고 있다.
특히 은행직원의 말을 듣고 가입한 사람에게 지금와서 약관 제한내용을 알지 못한 가입자 측이 잘못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식이라는 것.
은행측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시인하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으로 달리 방법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하고있다.
재형저축은 현재 수익률중 일부(4.6∼15.9%)를 한국은행출연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 기금적자가 날로 누적되어 올해 말까지는 5천3백22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실정이다.
그런데 지난해 4월 감사원 조사에서 무자격등 불법계좌만도 21만좌에 이르고 있음이 드러나 결국 국고를 유실시키고 있다는 상급기관의 책임추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감사원 감사결파가 나오자 재무부는 부랴부랴 지난 2월초 「재형저축 준수사항과 위규가입자 정리」에 관한 공문을 각 은행에 띄우고 은행 수신부장들이 3월 중순 「행동통일」을 결의, 처음으로 위규가입자 정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입자측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도 초과분을 금리가 높은 다른 저축으로 전환시키는 등의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은행측의 설명이다.
이같은 사태를 빚은데는 물론 자격이 없거나 한도를 초과한 가입자에도 일단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은행이 이처럼 스스로 공신력을 짓밟아도 좋으냐는 점이다.
당초 은행이나 가입자가 무시해도 좋을 유명무실한 약관이라면 뒤늦게 그것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더우기 같은 위규 가입자라도 2월 만기자는 적법하고 3월 만기자는 위법이라는 식의 해석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몇몇 은행에서는 소비자단체등을 통해 「목소리 크게」항의하는 가입자들에게는 「없었던 일」로 해달라며 일체의 보상을 약속하고 있다는 얘기다.
위법을 적법으로 만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경과조치라도 마련하여 은행측에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잘못으로 인한 손해를 은행이 부담하는 양식을 보여야 할 것 같다.

<박신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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