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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 총리서 평의원 된 이해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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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해찬 전 총리가 정부중앙청사에서 이임식을 하던 15일, 카메라는 국회 본회의장의 비어 있는 이해찬 의원석을 비췄다. 실세 총리에서 평의원으로 돌아간 이 전총리는 20일 닷새 만에 국회의원회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총리실을 떠난 지 닷새, 평의원으로 돌아온 국회의원 이해찬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20일 오후 이 전 총리는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처음 나타났다. 사무실엔 이 전 총리와 함께 사표를 낸 이강진 전 총리실 공보수석이 있었다.

이 전 총리는 기자들의 접근을 거부했다. 한 기자가 찾아가자 "기자들은 안 만나"라고 언성을 높였다. '골프 파문' 보도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전 수석은 "(이 전 총리에게) 좀 더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1개월 전 총리에 취임하면서 폐쇄했던 그의 홈페이지도 여전히 '휴식 중'이다. 초기 화면엔 "깨끗한 정치실현으로 보답하겠다"는 문구만 덩그러니 떠 있다.

총리직을 관뒀지만 그의 움직임은 여전히 관심거리다. 열린우리당은 예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경계하는 시선도 있다. '국회를 무시했던 총리'라고 비판하던 한나라당도 '의원 이해찬'의 의정활동을 새삼 주시하고 있다. 당사자인 이 전 총리도 지금부터는 새로운 정치실험을 해야 한다.

◆ 실세 총리에서 평의원으로= 국회 관계자는 "이 전 총리 같은 정치 경로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말한다. 총리를 마치고 평의원으로 돌아간 사람은 여럿 있었다. 김종필.이회창.이홍구.이한동씨 등의 경우다. 그러나 김종필.이한동씨는 총리를 하기 전에 당(자민련)의 총재였다. 이회창.이홍구씨는 총리직을 수행한 뒤 당 총재 또는 대선 후보로 당(신한국당)에 영입된 케이스다. 이들은 총리직을 전후해 스스로 강력한 '정치세력'을 쥐고 있었다.

이해찬 의원은 좀 다르다. 54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전직 총리'가 됐다. 열린우리당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이 전 총리를 보스나 리더로 생각하는 당내 세력은 거의 없다"며 "이 전 총리 스스로 그런 세력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향력은 총리 사퇴 후 급감했다. 같이 내각에 있다 조금 먼저 당에 돌아간 정동영 의장, 김근태 최고위원과 비교하면 확연히 느껴진다. 차관급 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십여 명에 달했던 이 전 총리의 참모진은 4~9급 보좌관 6명으로 줄었다. 의원회관 사무실 하나가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다. 경호와 의전도 중단됐다. 여당 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예기치 않게 물러났기 때문에 냉기를 더 실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가 소속한 국회 상임위는 보건복지위다. 한때 그의 보좌관이었던 유시민 장관을 상대로 정책질의를 벌이게 된다.

◆ 당내 역할 있을까=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예우 차원에서 이 전 총리를 당 고문에 위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많은 의원도 그렇게 예측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다수의 의원은 이 전 총리가 주요 정치 현안에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이 전 총리의 성격적 특징에다 지방선거를 앞둔 그의 정치적 움직임은 오히려 악재가 될 것이란 분석까지 덧붙여진 견해들이다. 중간 당직의 A의원은 "표나지 않는 그의 행보는 적어도 5.30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될 것"으로 관측했다. 정동영 의장과 가까운 B의원은 "지금 이 전 총리를 지방선거에 투입할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국민들은 이 전 총리에게 자숙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목희 의원은 "한동안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은 지방선거 이후가 될 듯하다. 친노 직계로 불리는 이화영 의원은 "이 전 총리의 경륜과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당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동료 의원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지방선거 후 '이해찬 친노 신당'의 탄생을 예측하는 목소리(김능구 이-윈콤 대표)도 나온다. 김근태 최고위원과 가까운 C의원은 "여권 내 대선 후보 경쟁 국면에서 이 전 총리가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김 최고위원이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이해찬발(發) 파열음'을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목소리다.

김정욱.채병건.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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