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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의 밤바람이 매섭다 그래도 사막의 밤은 황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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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동 평화를 기원하는 '사하라 사막 평화의 캐러밴' 참가자들이 18일 밤 이집트 동부 사막에서 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사하라 AP=연합뉴스]

국제평화단체인 '브레이킹 디 아이스'가 주관하는 '평화의 캐러밴 사하라 사막 5500km' 참가자 10명은 웹사이트(http://www.breakingtheice.org/index.php)에 생생한 체험을 일기로 남기며 이동하고 있다. 다음은 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출발한 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라말라를 거쳐 요르단.이집트.리비아까지의 대장정 기록의 일부다.

◆ 1일차(예루살렘, 네다 사르마스트)=오늘은 대장정 첫날이다. 아침에 호텔 창문을 열자 이스라엘 국기가 눈앞에 있다. 이란인인 나로선 상상조차 못해 본 일이다. 거리에 나서자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단순히 외국인이어서일까, 아니면 검은 옷과 선글라스 때문에 정보요원처럼 보여서일까.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와의 기자회견은 그다지 맘이 편치 않았다. 이란의 가족.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페레스 전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가 이란으로 못 돌아오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 5일차(요르단 아카바로 향하는 길, 스탠퍼드 시버)=사해의 해변에서 눈을 떴다. 간밤에 침낭을 파고드는 거센 바람에 두 번이나 잠에서 깼다. 이집트 시나이 사막으로 가는 배를 놓쳐 남쪽의 아카바로 내려가 다른 배를 타기로 했다. 사해를 따라 아카바로 가는 길에 아름다운 사막이 펼쳐졌다. 간단히 먹으려던 점심은 이야기가 길어져 두 시간을 넘겼다. 각국의 정치와 문화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한밤중에 아카바에 도착해 야시장에도 잠깐 들렀다.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 일행 중 서양인을 보고 욕을 하는 것이 들렸다.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 7일차(이집트 샤롬 엘 셰이크, 예프겐 페트로비치 코주시코)=아침에 이집트에 도착했다. 눈부신 태양과 해변, 그리고 사막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국가와 출신이 각기 다른 사람들과 일행을 이뤄 여행하는 것은 내 영혼을 사랑으로 충만케 한다. 과거와 미래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라크전에 파병된 우크라이나의 병사였던 나는 지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레이먼드, 그리고 뉴욕의 소방관이었던 대니얼,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투기 조종사였던 길과 한 팀을 이뤄 모험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 이들이 좋다. 우리의 과거와 이번 장정을 카메라에 담으면 기막힌 영화가 될 것이다.

◆ 9일차(이집트, 갈리트 오렌)=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제발 아무 일도 없길 바랐다. 여행이 시작된 이래 많은 난관을 만났기에 오늘만은 좀 쉬면서 편안하게 걷고 싶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피라미드를 향해 출발했다. 피라미드를 처음 보는 나로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노예였지만 지금은 자유롭다. 하지만 궁극적인 자유를 위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 13일차(이집트의 하얀 사막 '바하리아', 동행한 의사 아나 뮬러)=낙타 여행 마지막날이다. 모험으로 가득한 여정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관찰자인 내가 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잘 어울리는 한 팀이 돼가고 있다. 같은 차를 타도 서로 다른 쪽으로 가자고 우기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리비아의 트리폴리까지 같이 간다는 목표 아래 하나가 돼가고 있다.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란 이 작은 팀에서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종국엔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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