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 선언 포함 對美 압박용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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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인민회의가 3일 6자회담과 관련해 "외무성이 취한 모든 조치들을 지지하고 그에 따른 대책들을 취하겠다"고 한 것은 일단 핵 보유 선언과 핵 실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말 중국 베이징(北京) 6자(남북, 미.일.중.러)회담 때의 북.미 양자 접촉과 전체회의에서 핵 보유 선언과 핵 실험 용의 의사를 밝혔고, 회담이 끝난 후에도 핵 억제력 강화를 강조해 왔다. 그런 만큼 최고인민회의가 밝힌 '대책'은 핵 보유 선언이나 핵 실험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은 회담에서 핵 운반 수단도 갖고 있다고 한 만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도 '대책'에 들어갈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은 핵 억제력의 구성 요소다.

지난 2월 재가동에 들어간 5㎿e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을 빼내 추가로 재처리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이번 회의가 결정사항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지난해 10월 핵 문제가 불거진 이래 일관되게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 유지 정책'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최고인민회의가 외무성 노선을 지지하고 추인한 것은 다른 형식의 발표보다 무게가 실린다. 최고인민회의가 헌법상 최고 기관인데다 이번 회의는 김정일 정권의 2기 출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이 날짜 사설의 제목이 '공화국 역사에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될 뜻 깊은 (최고인민)회의'라고 한 점은 음미해볼 대목이다.

최고인민회의의 이번 결정은 미국 압박용 색채가 짙어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1차 6자회담에서 선(先) 북핵 폐기의 기존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나지 않아 "회담이 탁상공론의 마당이 됐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제2차 6자회담 교섭 과정이나 2차 회담에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카드일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2일 "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확고한 의지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 핵 보유 선언 등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권 수립 55주년인 오는 9일이 특히 주목된다. 북한은 평양에서의 1백만명 대행진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이날을 기념할 예정으로 있다.

중국의 왕이(王毅)외교부 부부장이 1일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미국의 대북 정책을 비난한 것은 바로 북한의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막기 위한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정보 당국도 북한의 추가적 조치가 9일을 계기로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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