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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르, 베토벤의 합창을 ‘보여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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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30면

‘춤이 들리고, 음악이 보인다.’ 음악과 안무의 조화가 빼어난 무용작품을 얘기할 때 흔히 하는 말이지만, 납득이 가는 무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휘 거장 주빈 메타가 “음악을 완벽히 이해하고 내 앞에서 동작과 함께 음악을 분석했다”고 인정한 모리스 베자르(1927~2007)라면 다르다. 베토벤 악보를 완전히 외워 음표 하나하나에 충실하게 안무했던 베자르가 스스로 “무용이 아니라 무용이 만들어내는 음악”이라고 표현했던 ‘교향곡 9번’ 얘기다.

영화 ‘댄싱 베토벤’ #감독: 아란차 아기레 #주연: 질 로망·주빈 메타 #등급: 전체관람가

영화 ‘댄싱 베토벤’은 20세기 발레사에 남을 걸작이라 칭송받는 전설의 스테이지 ‘교향곡 9번’을 2014년 재창작하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베자르가 1964년 브뤼셀에서 초연한 ‘교향곡 9번’은 베토벤 ‘합창’의 웅장한 스케일을 표현하기 위해 80여 무용수를 비롯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등 총 350명의 아티스트가 동원된 거대한 프로젝트이기에 무대화가 쉽지 않다. 99년 파리오페라좌 공연을 끝으로 봉인되었던 것을 15년 만에 일본 도쿄발레단이 살려냈다. 베자르 생전부터 그의 레퍼토리를 꾸준히 사모은 도쿄발레단이 창립 5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 50주년을 맞은 ‘교향곡 9번’을 스위스 로잔의 베자르 발레단과 함께 공동제작했다. 베자르 사후 발레단의 갈등과 도전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자르, 그리고 발레는 계속된다’(2009)로 호평받았던 아란차 아기레 감독이 그 과정을 좇았다.

12세기 떠돌이 수사 앙리 드 로잔의 비관적 세계관에 관한 프롤로그는 일견 생뚱맞지만 베자르의 박애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영화는 ‘교향곡 9번’을 통한 베토벤과 베자르의 만남에 더해 베자르의 페르소나였던 질 로망 예술감독이 이끄는 베자르 발레단과 도쿄발레단, 그리고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만남을 정교하게 엮어가며 그 바탕에 깔린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2014년 2월부터 9개월에 걸친 리허설 과정과 10월 도쿄 공연 하이라이트까지 긴 여정을 안내하는 것은 질 로망의 딸인 배우 말리야 로망. 로잔과 도쿄를 왕복하며 겨울에서 가을까지 4계절 변화를 생명의 탄생에 비유한 각본없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2악장 주역으로 낙점됐던 카트리나가 연습 도중 임신 사실을 알고 공연을 포기하지만, 4악장 주역인 아기아빠 오스카가 새 생명을 맞는 기대와 아내의 못다한 열정까지 담아 공연을 완성시키는 식이다.

베자르는 교향곡 구조에 맞춰 1악장 탄생의 고통에서 2악장 삶의 환희, 3악장 사랑과 희생, 4악장 화합을 상징하는 안무를 했다. 무대 바닥에는 로잔 참사회 성당 장미창의 사각과 원이 교차 반복되는 문양을 그대로 그렸는데, 긍정적 희망으로 가득한 시공간의 조화를 상징하는 이 그림이 그대로 무용수들의 동선이 된다.

공연을 앞둔 가을, 도쿄에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이끄는 주빈 메타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폭력을 이야기할 때 베토벤과 동시대 화가 고야의 ‘전쟁의 참화’시리즈와 4악장 공연실황이 교차한다.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 80명이 무대 위에서 손을 잡고 바닥의 동선을 따라 원을 그리는 4악장은 ‘환희의 송가’ 대합창과 일체가 되며 ‘모든 인류는 형제’라는 실러의 메시지를 웅변하는 스펙터클이 압권인데, 공연장선 절대 볼 수 없는 앵글로 완벽한 원형의 동선을 비추는 엔딩이 영화의 백미가 됐다.

프롤로그의 비관주의자 앙리 드 로잔은 ‘세상은 악이 번성하는 악마의 사냥터이며 하나님 왕국은 따로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9개월 여정의 끝에 “나는 하나님 왕국과 악마의 왕국이 같은 곳 같다. 둘 다 우리 손안에 있다”고 말하는 말리야처럼, 베토벤도 베자르도 같은 믿음이었을 것 같다. 그들의 합창이 ‘예술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했으니 말이다.

공연 직전 말리야는 주빈 메타에게 재미난 질문을 던진다. 작곡 당시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던 베토벤이 이 공연을 보면 음악을 보게 될까. 거장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아주 좋은 질문”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베토벤은 몰라도, 관객은 볼 수 있었으리라.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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