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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개혁파 갈등 표면화|리가초프 실각 설 속의 소 권력투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월말 임시 당 대회를 앞두고 크렘린의 개혁파와 개혁 신중론 자들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임시 당 대회는 「고르바초프」당 서기장이 개혁 정책의 기반을 다지기 의해 인적·정책적 정비를 도모하려고 해 소집을 강행했던 것이다. 개혁·보수 세력간의 투쟁이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이론 담당 서기로서 당내 서열도 제2인자이자 「고르바츠프」견제세력의 선두 격인「리가초프」의 실각 설은 이러한 추측을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고르바초프」와「리가초프」의 갈등이 최근 두드러지게 된 것은「고르바초프」가 유고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하려던 하루 전날인 3월 13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의 기관지이기도 한 소비에츠카야로시아 지에 레닌그라드 공예대학 화학 여교사의『우리는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는 투고가 1면에 전재되면서부터였다.
이 편지는『소련을 공업국가로 성장시킨「스탈린」의 공업화 정책 및 농업 집단화, 그리고 문화혁명에 대한 일방적 평가는 단호히 반대한다』며 『우리의 역사가 오류와 범죄만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개혁과 개방을 내세우면서 위로부터의 강제에 대한 부정의 일환으로 또 국민들의 자발적 개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고르바초프」가 벌이고 있는 반「스탈린」운동을 공격한 내용이었다.
3주일 후 프라우다는 『그것은 개혁 반대세력의 강령 및 선언이며 당의 결정을 서서히 와해시키려는 음모』라고 비난했다. 이후 소련 언론이 양파의 견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가운데 개혁 신중론 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담긴 팸플릿을 배포했고「고르바초프」서기장도 15개 공화국 및 주요지역 지도자들과의 세 차례 모임을 통해 자신의 개혁 정책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며 언론인 동맹·영화인 동맹·작곡가 동맹·연극인 동맹·건축가 동맹· 디자이너 동맹·술가 동맹·작가 동맹은 개혁지지 공개 서한을 프라우다에 보냈다.
이와 동시에 당내 제2 인자이며 개혁 신중론자의 대부로 알려진「리가초프」의 실권 설 및 권한 축소 설 등 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당의 이데올로기 담당 서기인 점으로 보아 명목상 그의 휘하에 있는 문화단체가 그에 대해 노골적인 반란을 보인 것은 그 어느 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더구나「고르바초프」가 방 소 중인 미 실업가에게 『5월의 미소 정상회담까지 「리가초프」를 해임하겠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서방 언론에 보도되면서 내부의 심상치 않은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실질 권한이 없는 최고회의 의장직으로 갈 것이라는 실각 설도 있었으나 그가 지난 22일 크렘린 대 궁전에서 열린 「레닌」탄생 1백13주년 기념식에 「고르바초프」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소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27일 주간 모스크바 뉴스 지는「개혁 반대론 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촉구하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고 한 것은 「고르바초프」측이 6월의 임시 당 대회까지 개혁 논의를 둘러싼 견해의 통일을 어떤 방법으로든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을 추구하며 보수세력 제거작업에 착수, 86년 당 대회에서 중앙위원 3백 여명 중 34%만을 유임시켰을 뿐 나머지는 탈락시켜 기반을 강화해 왔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리가초프」를 중심으로 반 개혁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거나 그렇다고 주장되고 있는 현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르바초프」 자신이 「리가초프」로 상징되는 구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고 구세력들이 거세를 두려워한 나머지 방어용으로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개혁정책의 하나인「공개성」에 의한 참다운 개혁정책을 도출해 내려는 의견 수렴과정의 당내 탄력성을 반대하고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근「리가초프」의 실각 설을 둘러싼 크렘린의 움직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6월말로 예정된 소연방 당 협의회의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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