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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냉소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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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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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에 이런 얘기 하려니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나. 도무지 올림픽을 하나 싶다. 한때 ‘올림픽 국뽕’이라고 했다. 올림픽만 열리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정작 중요한 현안이 묻힌다는 우려였다. 지금은 거꾸로 ‘올림픽 패싱’이라고 할 만큼 무관심하다. 88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이 땅에서 열리는 지구촌 축제인데, 그새 대한민국이 쿨해진 걸까.

조짐은 있었다. 돈 실컷 쏟아붓고 해봤자 남는 거 별로 없더라는, 전 세계적인 학습효과였다. 올림픽 개최지는 7년 전에 확정된다. 2016년 리우, 2020년 도쿄에 이어 2024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를 두고 지난해 IOC 총회가 열렸다. 치열한 유치전이 있어야 하건만, 유력 후보였던 로마·보스턴은 중도 포기했다. 남은 건 파리·LA 두 군데뿐이었다. 그러자 IOC가 꾀를 내 2024년 파리, 2028년 LA로 나누면서 11년 뒤 올림픽 개최지마저 확정해버리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류성옥 고려대 교수는 “과시형 메가 이벤트에 대한 피로감”이라고 진단했다.

블랙코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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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더 특수하다. 1990년대부터 금메달을 휩쓸었던 쇼트트랙과 김연아란 걸출한 스타가 있었지만, 국내에서 겨울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에 가깝다. 서울 이외 도시는 안중에 없는 중앙집중적 사고도 한몫했을 듯싶다. 물론 결정타는 북한이었다. 시중엔 “이번 올림픽은 단일팀으로 시작해 현송월을 거쳐 김여정으로 끝난다”는 말이 파다하다.

단지 북한에 시선이 쏠려 올림픽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차원이 아니다. 2017년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는 26.2%로 8년 전에 비해 15.6%포인트나 떨어졌다. 반면 20대의 77.9%가 북한이 무력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해 전 연령 중 가장 높았다. 반북 정서에선 2030이 ‘우파 꼰대’에 못지않다. 여태 당해온 북한의 땡깡·공갈에 질린 탓에 올림픽이라고 그들이 내려와 설쳐대는 꼴이 보기 싫다는 거다. 북한 혐오가 올림픽 냉소로 이어지고 있다.

켜켜이 응축돼 온 남성 혐오가 폭발한 게 최근 일련의 미투(#Me Too) 운동이다. 북한 혐오 역시 비슷한 구석이 있다. 김여정을 살뜰히 모시고,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만 목을 맬 때가 아니다. 균열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올지 모른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