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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수금하는 브랜드 수수료, 적정 선은?…'브랜드 수수료 논쟁' 불붙나

중앙일보

입력

[사진=각사]

[사진=각사]

2011년 국세청은 신한금융지주사가 자회사 신한은행으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지 않은 것은 "자회사에 대한 부당 지원"이라 판단했다. 브랜드 사용료 수익을 올려 세금을 낼 수 있었음에도 신한금융이 조세를 회피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년 뒤 국세청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이번엔 자회사 신한은행이 금융지주사에 브랜드 수수료를 낸 것은 수익을 줄여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꼼수로 판단했다. 신한은행에 법인세 1300억원을 부과했다.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지주사는 브랜드 수수료를 안 받으면 안되고, 은행은 내면 안 되는 '규제의 모순'에 빠진 것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브랜드 사용 가치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규제하려는 발상이 결국 정책 혼선을 야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경연 "국내보다 해외 기업 수수료 비중 많은 곳 수두룩" #"농협·서울대, 기업보다 수수료 더 받아…시장 자율로 책정돼야" #공정위, 대기업 수수료 수취 내용 공시 조치…"시장 자율 감시" 강조

대기업그룹 지주회사는 계열사로부터 어느 정도의 브랜드 수수료를 받는 것이 적정할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브랜드 수수료를 통한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를 규제할 방침을 밝히면서 '브랜드 수수료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수수료 수취 내용 공개를 통한 자율 규제 성격이지만, 재계 일각에선 이마저도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보이고 있다.

브랜드 수수료란 기업 고유의 상표를 사용한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다. 가령 르노삼성자동차는 기업 명칭과 명함·간판 등에 '삼성'이란 브랜드를 사용한 대가로 국내 자동차 매출액의 0.8%를 삼성그룹에 지불한다. 브랜드 수수료는 많은 경우 대기업그룹을 지배하는 지주회사가 계열사로부터 받아 수익원으로 삼는다. 공정위는 브랜드 수수료 비중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시각이다.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5대 그룹 경영자 간담회에서 "지주사는 배당금이 주된 수입이 돼야 하지만, 브랜드와 건물 수수료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재계에선 그러나 정부가 국내 기업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주장한다. 국내 기업이 받는 브랜드 수수료가 해외 기업보다 특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데도 국내 기업에만 색안경을 끼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은 7일 발간한 '브랜드 사용료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해외 주요 기업집단의 브랜드 사용료율은 매출액 대비 0.1~2.0% 수준"이라며 "국내 기업집단의 브랜드 사용료율(0.007~0.75%) 수준보다 높은 곳도 많다"고 밝혔다.

가령 미국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매출액의 2%, 메리어트 그룹은 5~6%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급하고 있다. 일본 야후도 미국 야후에 매출 총이익의 3%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급한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집단의 브랜드 사용료율 수준보다 더 높은 상표 사용료율을 부과하는 곳도 있었다. 농협은 계열사에 매출액의 0.3~2.5%, 서울대학교는 교내 창업벤처기업에 매출액의 1% 이상을 상표 사용료로 걷고 있다는 것이다.

유환익 한경연 정책본부장은 "기업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인 브랜드 사용료를 규제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반하는 과도한 정책"이라며 "시장 자율에 따라 책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도 브랜드 수수료 가격 자체에 개입할 의도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정부가 브랜드 수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시장과 이해관계자에 의한 자율적인 감시로 적정한 브랜드 수수료 수준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30일 대기업 집단의 브랜드 수수료 상세 내용을 공개하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한다.

신동열 공정위 공시점검과장은 "브랜드 수수료를 공시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충분하게 공시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며 "상세 정보를 시장에 충분히 제공해 기업 스스로 정당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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