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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2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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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내가 자네 공을 모르겠나. 그래서 이렇게 술을 대접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거 약소하지만 받아두게. 닷냥이네."

서문경이 술상 밑으로 은전을 이외전에게 건네주자 이외전이 얼른 그 돈을 챙겨 소매 안에 넣으며 헛기침을 몇 번 하였다.

"자, 우리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세. 무송이 그놈 날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에 벼룩이지."

서문경이 거드름을 피우며 주전자를 들어 이외전의 술잔에 술을 부었다.

"암, 벼룩이 뛰어봤자지. 요즘 세상은 힘만 세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지. 요령이 있어야지 요령이. 어디다 돈을 써야 일이 풀리는지 그런 걸 잘 알아야 되는데 말이야. 무송이 운가라는 어린애 말만 듣고 무턱대고 고소장을 써 왔으니 세상을 몰라도 한참을 몰라요. 허허허."

이외전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 서문경이 술집 문께를 바라보다 흠칫 온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무송이 문기둥 옆에 서서 이쪽을 엿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오줌이 마렵네. 나, 잠깐 실례하겠네."

서문경이 떨리는 무릎을 세워 허둥지둥 변소가 있는 뒤뜰로 달아났다. 그 순간, 무송도 술집으로 뛰어들었으나 서문경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이외전도 뒤늦게 달아나려고 하였으나 술상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무송에게 잡히고 말았다.

"뭐? 벼룩이 뛰어봤자라고? 이제 벼룩이 뛰는 법을 알겠느냐? 이 벼룩이 똥만도 못한 자식아! 그래 뇌물을 받아 처먹고 억울한 사람 더욱 억울하게 해?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서문대인인가 서문대가린가 하는 작자들이 돈 냄새 풍기며 날뛰는 거야. 너희들이야말로 벼룩이 뛰어봤자야. 돈 믿고 아무리 뛰어봤자 거기가 거기야. 이놈의 자식아!"

무송이 한 발로 술상을 걷어차자 상 위에 놓여 있던 주전자와 접시.술잔.음식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술집 기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손님들도 당황해하며 몸을 웅크렸다.

이외전이 무송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어림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외전이 온힘을 다해 펄쩍 몸을 솟구치며 머리로 무송의 턱을 가격하려고 하였지만 가슴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어, 정말 벼룩이처럼 뛰려고 하네."

무송이 이외전을 제압하기 위해 그의 면상을 주먹으로 냅다 갈겼다. 이외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코피를 쏟으면서 주저앉았다.

"나를 때리면 무슨 죄에 해당하는지 알지? 공무집행방해죄에다 폭행죄에다 명예훼손죄에다…."

이외전이 그런 중에도 무송에게 대들고 있었다.

"그래 형법에 있는 죄 다 들먹거려라. 내가 겁내는 줄 알아? 너 같은 놈이야말로 살인방조죄에다 뇌물죄에다 직무유기죄에다 사기죄야. 이 악질 놈아!"

무송이 주먹을 들어 또 한차례 내리치려 하자 이외전이 잽싸게 몸을 빼어 의자 위로 뛰어오르더니 창문 너머로 달아나려 하였다. 창틀에 걸린 이외전의 엉덩이를 무송이 한 발로 세게 걷어차자 골반이 으깨졌는지 이외전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굴러떨어졌다.

무송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외전을 집어들어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창문 너머로 던져버렸다. 땅에 부딪치면서 목뼈가 부러진 이외전은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는지 무송은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이외전의 사타구니를 발로 짓이겼다. 얼마나 세게 짓이겼던지 이외전의 두 고환이 우직 소리를 내며 터지고 말았다.

이외전이 잠시 흰자위만 보이며 두 눈을 멀겋게 떴으나 곧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죽었어, 죽은 게 분명해."

주변에 둘러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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