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원칙 없는 병역특례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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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 선수들이 일본을 연거푸 이기고, 야구 종주국인 미국마저 대파한 것은 한국 야구 101년사의 최대 경사다. 객관적 실력이 앞서는 이들을 우리 선수들은 불굴의 투혼과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특히 김인식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은 국민적 영웅이었던 히딩크 전 감독과 비견되며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국민은 4년 전 월드컵에 이어 또다시 '야구 4강 신화'에 감동하고 있다. 이제 미국.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한국 야구, 나아가 한국인을 다시 보고 있다. 김한길 원내대표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긍지를 세계 만방에 확인시켜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준 선수들에게 병역특례 주는 것을 논의해볼 수는 있다고 본다. 일본과 미국을 연파하고 WBC 4강에 진출한 것이 올림픽 3위 입상이나 아시안게임 우승, 월드컵 16강 진출에 비해 결코 못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룬 성과가 빛난다 하더라도 병역특례 결정이 어떤 원칙이나 기준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데는 문제가 있다. 어제 회의에서도 일부 의원은 "병역특례가 원칙 없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마쳐야 하는 신성한 병역의무에 대한 규정을 정부와 여당이 마치 선심 쓰듯 이렇게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바로 병역특례를 주자고 나서는 정부여당은 지금의 분위기를 이용하자는 것밖에는 안 된다. 인기에 편승하자는 얄팍한 수법이다. 전문가들의 논의와 국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병역특례 심의 절차나 심의 기준을 검토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 정부가 먼저 원칙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