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전은 투자]6650만원만 더 썼더라면 제천 29명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재 참사가 일어난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외벽 단열재가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져 피해가 더 컸다. [중앙포토]

화재 참사가 일어난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외벽 단열재가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져 피해가 더 컸다. [중앙포토]

‘6650만원’
지난해 12월 화재로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의 복합 상가 건물(스포츠센터 입주) 외벽을 불에 잘 타지 않는 단열재로 바꾸는 데 들 것으로 추산된 비용이다. 이는 본지가 단열재 제조 업체 및 시공업체 관계자 등과 함께 건축물대장에 적힌 이 건물의 연면적을 1465㎡로 추정해 나온 결과다.

이 건물은 원래 ‘스티로폼’을 사용한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스티로폼 외단열 시공 금액은 3940만원(설계가 기준) 가량 든다. 만약 이를 불에 잘 타지 않는 무기단열재 중 하나인 ‘미네랄울’로 시공했다면 1억590만원 정도가 들 것으로 추산됐다. 그 차액 6650만원을 더 썼다면 제천 스포츠센터는 처음부터 화재에 안전한 외벽을 갖췄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불에 잘 타는 소재(사진 왼쪽)과 무기단열재(오른쪽)의 화재 발생시 상황을 비교한 모습. [사진 KCC]

불에 잘 타는 소재(사진 왼쪽)과 무기단열재(오른쪽)의 화재 발생시 상황을 비교한 모습. [사진 KCC]

정식 명칭이 ‘외단열 미장마감 공법(EIFSㆍExterior Insulation Finishing System)’인 드라이비트 공법 자체가 화재에 꼭 취약한 것은 아니다. 단열재로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모래ㆍ자갈 등 무기 원료로 만들어진 ‘그라스울’, ‘미네랄울’ 등의 불연재를 사용하면 외벽이 불에 잘 타지 않는다. ‘페놀폼’ 등 준불연재는 불에 타긴 하지만 스티로폼에 비해선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선 스티로폼이라고 불리는 ‘발포폴리스티렌’ 등 유기단열재가 드라이비트 공법에 자주 사용된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불에 잘 타는 스티로폼 단열재는 매번 대형 화재 때마다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됐다.

2015년 의정부 화재 때 규제 강화됐지만 빈틈 곳곳에  

 지난 2015년 화재 참사가 일어난 경기 의정부 대봉그린 아파트의 유리창이 깨지고 외벽이 심하게 그을려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5년 화재 참사가 일어난 경기 의정부 대봉그린 아파트의 유리창이 깨지고 외벽이 심하게 그을려 있다. [중앙포토]

2015년 의정부 화재 이후 정부는 건축물 외벽에 불에 타지 않는 불연성 소재나 준불연성 소재를 사용해야 하는 대상을 30층 이상에서 6층 이상 건축물로 확대했다. 문제는 이미 지어진 건물들이다. 5층 이하나 이미 지어진 고층 건물들은 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미 가연성 단열재로 된 건축물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므로 이 건물들에 대한 안전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건물들 대다수가 개인 소유라 무작정 세금을 투입하기도 어렵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기존 건축물을 정부가 모든 비용을 대면서 바꿔줄 수는 없어 계도나 안내 등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건건이 개인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하기 전에 건축물, SOC 등의 안전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고도 원인 따져보면 결국은 ‘원가절감’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 버스정류장 인근 공사장에서 넘어진 크레인이 버스를 덮쳤다. 비용 절감을 위해 신고한 공법과 달리 철거작업을 진행한 게 사고 원인으로 드러났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 버스정류장 인근 공사장에서 넘어진 크레인이 버스를 덮쳤다. 비용 절감을 위해 신고한 공법과 달리 철거작업을 진행한 게 사고 원인으로 드러났다. [중앙포토]

화재 외에 다른 사고들도 결국은 ‘원가절감’ 때문에 일어난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서울 등촌동에서 공사장 크레인이 넘어지며 버스를 덮쳐 승객 1명이 숨진 사고도 그랬다. 경찰 조사 결과 현장 관리소장 김모(41)씨가 철거 공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구청에 신고한 공법과 다른 방식으로 철거작업을 진행한 것이 사고 원인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6년 5월 일어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 참사도 비슷한 경우다. 당시 서울메트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문 보수 업무를 100% 외부 하청에 맡겼다. 50개에 달하는 역을 최소인력(평일6명, 휴일5명)이 담당하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게 사고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2003년 192명이 사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의 원인도 비용 절감을 위한 과도한 인력 축소와 부실한 내연재였다. 1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비용 절감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얼마나 더 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한영익ㆍ송우영ㆍ이태윤ㆍ위성욱ㆍ임명수ㆍ조한대ㆍ하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