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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교수의 철학 기행(16) 엄정식 서강대 교수|「사르트르」와「보부아르」의 회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사르트르」와「보부아르」는 6년의 간격을 두고 타계했다. 묘비를 바라보니 문득 고인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만난지 30년이 경과했을 때 그녀는『나의 인생에는 확실한 성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와「사르트르」와의 관계다. 30년 이상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지 않고 잠든 밤이 없다. 그 기나긴 세월도 서로의 이야기에 기울이는 관심과 열성을 약화시키지는 않았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사르트르」도 이에 응답하여 「보부아르」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며 나보다 더 심오한 지식과 철학을 지닌 완벽한 대학자』임을 분명히 해두었다.『죽는다고 우리가 합쳐지지는 않을 것』임을 믿고 있었던 그들은 지금 내 눈앞에 나란히 묻혀있다. 우리는 이들의 삶과 사랑과 철학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들의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르트르」는 현대의 가장 큰 사조 중의 하나인 소위 실존주의를 완성시켰고 그 이념을 왕성한 저작활동과 현실에의 참여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시킨 인물이다. 오늘날 그의 인기와 영향력은 다소 퇴색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으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지성인임을 자처할 수없을 정도였으며, 사상과 정치와 종교와 문화에 관한 그의 발언과 입장은 대도시 파리의 중심을 관통하며 도도하게 흘러가는 센의 강물처럼 항상 현대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사상을 꿰뚫고 있는 단 하나의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무한하고도 절대적인 자유」다. 그는 인간의 자유에 단서를 붙이거나 제한을 가하는 어떠한 형태의 제도나 이론도 거부했다. 그는 인간의 이 자유를 「저주받은」것이라고 극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절대적인 자유 때문에 인간은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고독과 고뇌와 공포와 절망을 스스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이러한 실존적 절규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그 정체마저 확인하기가 어렵게된 현대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가장 호소력 있게 고발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부르짖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매혹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좀더 합리적인 설득력과 논증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우리는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만큼 그렇게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인 것 같지는 않으며 이러한 자유를 고집하기보다 인간들은 차라리 신을 찾아 각자 자기의 발걸음을 옮기는 경향이 있다. 결국 그도 인간은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파리떼」,생각만해도 「구토가 나는」 혹은 「쓸데없는 정열」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르트르」의 사상체계는 오히려「보부아르」의 소위 「애매성의 윤리학」에 의해서 많이 보완된 느낌이 있다.「보부아르」는 자유의 절대성을 계속 강조하기보다는 인간상황의 「비극적 애매성」에 주목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 애매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자기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정당화할 수 있고 실존주의가 왜 휴머니즘인지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계약결혼」도 이 애매성의 긍정 때문에 겨우 유지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서로 남이 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처럼 아껴주는 관계인데 인간상황의 애매성과 그 비극성을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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