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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쉰들러' 라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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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된 나치 치하 폴란드에 오스카 쉰들러라는 구세주가 있었다면 일본군이 1937년 대학살을 자행한 중국 난징(南京)엔 욘 라베(사진)라는 인물이 있었다.

폴란드에서 공장을 운영한 독일 사업가 쉰들러가 유대인 1100명을 나치 학살로부터 살려낸 것처럼,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일인 라베는 난징 대학살 당시 중국인 20만 명을 대피시켜 목숨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사 속에 묻혀져 가던 라베가 다시 중국에서 재조명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라베가 당시 살았던 난징의 집은 요즘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70년 가까이 관리하는 사람조차 없어 잡초가 무성한 채 폐허로 변해가던 곳이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난징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라베의 일대기를 교과서에 싣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37년 난징 대학살 당시 라베는 독일 지멘스 직원으로 현지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치당원이었던 라베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 삼국동맹의 일원이던 일본이 난징에서 벌이고 있던 잔혹 행위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나치 정부가 이를 외면하자 라베는 직접 나서서 중국인을 살려내기로 결심했다. 먼저 중국인 650명을 외국인인 자신의 집으로 대피시키고 음식을 제공했다. 또 난징 인근에 거주하던 외교관과 사업가 등 외국인들을 불러들여 '국제안전지역'을 형성함으로써 일본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안전지역에 피신해 살아남은 중국인은 모두 20만 명이나 된다.

나치 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한 뒤 '중국판 쉰들러' 라베는 연합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됐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는 50년 독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라베는 이 같은 영웅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공산당이 당시 라이벌 관계였던 국민당이 주도했던 항일운동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난징 대학살 자체를 국치로 여겼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중국이 '라베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일본의 중국 침략 부인 등 역사왜곡에 반박하고 젊은 세대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서다. 뉴욕 타임스는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나타난 부작용을 무마하기 위해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시안원 난징대학 중국역사센터 소장은 "일본의 우익은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그들은 2차대전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 왔다"면서 "우리는 이에 맞서 싸우고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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