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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규제의 틀을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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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혁신성장이 우리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혁신적 기업의 성공을 가로막는 규제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중고차 거래 ‘헤이딜러’는 오프라인 매장에 적용하는 업장면적 규제에 사업이 좌초될 뻔했고, 전세버스의 유휴 시간을 활용하여 승객을 연결하는 ‘콜버스’, 카풀 스타트업 ‘풀러스’, ‘우버’ 등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규제에 불법화되었거나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열거주의 규제 시스템 개편하고 #입법부의 과잉 규제도 억제해야 #벤처 투자 회수시장 활성화해 #대-중기 협력 시스템 구축 필요

아산나눔재단의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의하면 100대 글로벌 혁신 모델 중 절반 이상이 국내에서는 온전히 사업화될 수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 프레이저 연구소가 발표한 32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한 규제환경지수에서 한국은 28위를 차지했다. 세계은행의 WGI지수 중 규제의 질적 수준 측면에서 22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한국의 규제환경은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나쁜 편이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친노동정책으로 민간부문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의 구조적 문제들을 시급히 풀어나가야 한다.

첫째, 낡은 규제와 규제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우리나라 규제체계는 사전적으로 허용된 사업을 정의하고 자격요건과 행위를 규제하는 ‘열거주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체계 아래에서는 기존 사업 체계상 분류가 불가능한 신사업들은 불허될 수밖에 없다.

열거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 현 정부는 규제체계 전환에 필요한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방안을 조속히 제시해 과거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혁신을 주도하는 사업들은 산업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사업이나 온·오프라인 연계사업들이다.

혁신적 모델의 출현을 가로막는 과거 전통산업 기반의 낡은 규제들을 전면 점검하여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기능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 특히 지난 십여 년간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 온 정보서비스, 금융, 헬스케어 등 서비스산업 관련 규제들에 대한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규제로 더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둘째, 규제 양산의 원천을 제어해야 한다. 행정기관에 의한 입법은 사전적으로 규제영향평가가 의무화되어 있고 일몰제 적용을 받아 불필요한 규제억제의 제도적 장치가 구축되어 있다. 반면 의원 발의안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19대 국회의 경우 의원입법이 85%에 달하는 등 의원입법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규제억제를 위한 행정부의 노력은 그동안 무력화됐다.

이처럼 무책임한 정치권의 규제생성 구조는 억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의원입법에 대해 영국과 미국처럼 규제 개혁기구를 통한 사전심사나 독일과 프랑스처럼 입법영향분석서 첨부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셋째, 규제개혁은 혁신 생태계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중소-대기업 간 대립의 이분법적인 틀에 매몰되어 기업생태계 정상화에 필요한 규제개혁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벤처생태계의 심각한 문제점은 투자에 대한 회수시장이 부진하다는 데 있다. 스타트업이 성장을 통해 대기업에 이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공한 스타트업을 인수해 줄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투자자에게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이때 더욱 창의적인 기업과 투자자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상 규제로 인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회수시장 참여가 어렵게 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회수시장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분명 공정거래 측면에서 대기업의 경쟁 제한적 행위들을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경쟁 관계인 동시에 생태계 측면에서 상호의존적이라는 큰 그림에서 규제개혁의 방향을 세워야 할 것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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