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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타깃’된 대기업 공익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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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기업이 두려워하는 대표적인 국가 기관이다. 담합, 탈세와 같은 기업 경영 관련 편법 행위에 대한 조사권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 두 기관이 대기업 소유의 공익 재단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고 나섰다.

공정위, 편법 승계 도구로 의심 #작년 연말부터 2단계로 정밀조사 #국세개혁TF “공익재단 엄정 관리” #국세청도 곧 세무 집중검증 나설 듯 #재계 “기부 문화 확산 순기능 외면”

공정위는 대기업 산하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31일 밝혔다. 51개 기업집단 소속 171개 법인이 대상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소속 비영리법인의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 해당 여부, 특수관계인 현황 등 조사를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의 운영 실태를 전수조사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1단계 조사를 통해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을 추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출연받은 재산 내역 ▶수입·지출 개요 ▶출연받은 재산의 공익목적 사용현황 ▶공익법인 보유 주식 지분의 의결권 행사 현황 ▶특수관계인과의 내부거래 비중(연도별 내부거래 총액 및 특수관계인 종류별 비중) 등의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은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이내(성실 공익법인은 10%)로 보유할 경우 상속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1단계 조사가 기초 조사 수준이었다면 2단계 조사에서는 세제 혜택을 받는 공익법인이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공정위는 오는 3월까지 자료를 받아 상반기 내에 이를 분석하고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검토하기로 했다. 국세청도 이날 발표한 ‘2018년 국세행정 운영방안’에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 관련 탈세 혐의를 집중 분석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공정위와 국세청이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 정조준한 건 공익법인이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편법 경영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익법인은 말 그대로 교육, 사회복지, 문화, 환경 등 공익사업수행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그런데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같은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 등 3개의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경우 삼성서울병원과 삼성어린이집 사업을 하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생명 지분 2.18%, 삼성물산 지분 1.05%를 보유하는 등 3개 재단은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 등 상장 계열사 지분 2조9874억원 어치를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정몽구재단’은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지분 3934억원어치를, LG그룹의 ‘LG연암문화재단’과 ‘LG연암학원’도 그룹 상장 계열사 지분 3518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20개 그룹 40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의 지분 가치가 6조7000억원에 이른다. 경제개혁연대 산하 경제개혁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은 공익사업 재원이라기 보다는 그룹에 대한 지배권 유지·강화를 위한 의미가 크다”라고 주장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익법인 출연 재산이 변칙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공익법인에 대해선 일반 법인과 구별되는 별도의 세무조사 기준을 마련하는 등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부에 인색했던 문화를 바꾸고 대기업의 기부를 보편화한 순기능이 많은데, 기업의 편법적 지배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불법 행위는 당연히 엄단해야 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인해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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