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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한 김창일·어성일씨가 밝힌 사회상|북한도 뇌물이면 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폐쇄사회인 북한에서도 「주패놀이」라는 트럼프 도박이 성행하고 있다.
좋은 직장으로 가기 위해 인사청탁·뇌물이 오가고 두만강유역에서는 중공과의 밀무역이 성행한다.
권력기관원을 사칭한 범죄와 혼전성관계도 사회문제가 될 만큼 미혼남녀 사이에 퍼지고 있으며 외제물품구입을 위한 외화 암거래도 성행한다.
북한정권이 자본주의 병폐로 규정하고있는 이 같은 「범죄행위」가 넓게 퍼지고있는 사실은 지난달 중공과 필리핀을 거쳐 월남해 온 김창화(31)·어성일 (31) 씨에 의해 밝혀졌다.

<주패놀이>
70년대 말 중공으로부터 들어온 트럼프 노름으로 일반 노동자는 물론 대학생·직장인·당 간부등 각계 각층에 은밀하게 퍼져있다.
양권이나 현금을 걸고 하는 주패놀이는 사회안전부에 적발될 경우 노동자 등 일반인은 직장에 통보하거나 심할 때는 1년이상 노동교화소에서 무보수 중노동에 처해지고, 대학생은 대학부업농장(3∼4개월)과 혁명화 교육장(1년)에서 중노동 후 원소속 대학에 복귀한다.
혁명화 교육은 특히 80년대 들어 대학생들 사이에 도박과 디스코가 성행하자 85년초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들을 단속, 중노동을 통해 사상재무장을 시키기 위한 것이다.
김창화는 86년4∼5월께 동료대학생 김학철 (34) 등 친구4명과 여러 차례 주패로 1원내기 도박을 했는데 6월초 김학철이 동네 노동자들과 1∼10원내기 도박을 하다 안전원에게 적발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자백, 86년6월15일부터 1년간 평남원동탄광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
김창화는 중공여행 도중 나체트럼프를 갖고 있다가 적발돼 벌금 30원을 물기도 했다.

<뇌물·범죄>
북한사회에서의 직장이전은 원칙적으로 시·군인민위원회 노동과의 소개장 또는 배치장이 있거나 도급기관·중앙급기관의 소환 및 조정에 의해서만 가능하지만 소속 당비서나 직장간부 등에게 청탁·뇌물·정조제공 등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직장이전·보직변경·승진을 하고 있다.
어성일의 경우 82년10월 제대 후 덕천탄광 노동자로 배치되었으나 김창화의 둘째형 김동춘 (45) 에게 청탁, 평남 평성시 자연과학원도시경영사업소 노동자로 전직했다.
지난해 귀순한 김만철도 청진시 청암구역 노동과장에게 생선1백㎏의 뇌물을 주고 처남을 왕재산건설사업에서 철도총국 부업선기관사로 전직시켰다.
또 김과 어는 북한탈츨 때 87년 8월말 사회안전부 지도원에게 인삼주 1병을 주고 여행증명서를 부정발급 받았으며 87년10월에도 외국인용 경축담배 5갑을 뇌물로 주고 김은 철도대학 실습목적으로, 어는 외화벌이 목적으로 여행증명서를 부정발급 받기도 했다.
특히 어는 83년9월 친구 배일남 (27) 과 평성역앞에서 배회하다 고향친구인 부중선(28)과 그의 친구 한명을 만나 출처가 뚜렷하지 않은 돈을 갖고있다는 약점을 이용, 배일남의 친구 김봉화를 사회안전원으로 가장시켜 불심검문을 하는 체하면서 돈을 빼앗기도 했다.
어는 배일남·김봉화와 뺏은돈 1천원을 나눠가졌으나 84년9월 배일남이 같은 수법으로 금품을 빼앗으려다 사회 안전부에 검거되는 바람에 들통이 나 벌금 3백50원과 1년간 「비판」을 받았다.

<밀무역>
북한은 생필품이 절대부족하고 중공과 품목별 가격차이가 심해 중공교포들에 의해 한만국경지역에서 밀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중공 측 상품은 약품·옷·천·신발·안경·손거울 등이며 북한 측은 사금· 마른 해삼·낙지· 오징어· 명태 등이 교환용 상품이다.
중공에서 구입한 생필품은 북한내에서 60∼70배의 금액에 거래되고 북한의 생선은 중공에서 3∼4배 가격으로 거래된다.
거래가격은 일정치 않고 양복지 한 벌을 사금 7g과 바꾸는 식으로 물물교환으로 이뤄지며 특히 사금은 중공밀무역업자에게 인기가 높다.
밀거래는 장마로 인해 수심이 깊고 급류인 하절기에는 하지 못하고 결빙기나 가뭄때 어둠을 이용, 두만강을 건넌다.
국경경비는 두만강변을 따라 5백∼6백m 간격으로 초소가 있고 사회안전부·국가보위부에서 퇴직한 고령의 경비병이 맡고있으나 철조망 등 장애물시설이 없어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한다.

<외화암거래>
73년께부터 북한주재 외국인·관광객들에게 상품서비스를 제공하고 외화를 벌기 위해 외화상점을 설치했는데 이곳에서는 일반상점에서 구하기 힘든 TV·시계·카메라 등 외제상품을 팔고있다.
그러나 북한주민도 외화만 있으면 관리인들과 결탁해 외제물품을 살수 있게되자 외화암거래가 성행한다.
암거래 교환비율은 미화1달러에 북한화 2원14전인 공정환율보다 10배이상 비싸게 교환되고 있다.
김창화는 평양철도대학 재학 때인 83년10월 북한주재 외국대사관원과 암거래로 북한화 3천원을 3백달러로 환전했다가 화교에게 1백달러 당 4천원에 팔아 환차익을 보기도 했다.
북한당국은 암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83년12월 「외화와 바꾼돈」을 따로 찍어 외화를 이 화페로만 교환사용토록 했으나「외화와 바꾼돈」마저 암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직장생활>
종합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 1개뿐이고 나머지는 직능별 단과대학. 이밖에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장·농장·어장대학 등이 있다.
대학입학 조건은▲고등중학졸업자중 출신성분이 좋은 당·기관간부의 자녀▲군제대자중 군·당대학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자▲직장근무자중 직장·당대학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자에 한한다.
고등중학교 졸업자 중 대학 진학률은 10%선.
고등중학교 졸업자는 17∼18세지만 군복무를 마치거나 직장 근무자는 26∼27세가 되어 대학3∼4년이 되면 결혼적령기에 이르지만 재학 중 결혼은 드물다.
김창화는 81년8 월부터 사귀던 이은희 (26) 가 임신 6개월이 되어 85년11월 부득이 결혼했다.
김이 다니던 철도대학은 졸업생의 90%가 철도역 화물지도원으로 배치되는데 성분이 좋은 졸업생은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전용1호열차 승무원으로 배치된다.
철도대학은 이름만 대학일 뿐 기능교육에 불과하고 졸업 후 사회신분도 낮아 「졸도대학」으로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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