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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대 인권센터 '40만원짜리 외부 강의' 도마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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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 사이에 ‘서울대 인권센터의 유료 외부 강의’가 논란이다.
“학내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신고를 당한 학생들에게 수십만 원짜리 외부 강의를 들으라고 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특히 지정된 특정 강사에게 학생이 연락해 외부에서 강의를 듣고, 강의료를 강사의 개인 계좌로 입금하는 등의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성 문제를 포함한 인권 침해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조정·징계 요청 등을 하는 학내 기관이다.

성희롱 피신고자에 “인권 교육 안 받으면 징계 권고” #프리랜서 외부 강사, 개인 계좌로 40만원 입금 요구 #“교육 내용과 기관, 비용 등 공개 요구 행정심판 청구” #센터 “기관 신뢰 훼손하는 무차별 의혹제기 유감”

서울대 인권센터. [사진 서울대 인권센터 홈페이지]

서울대 인권센터. [사진 서울대 인권센터 홈페이지]

논란은 지난 27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서울대 인권센터에 대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는 한 졸업생의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인권센터가 학생들에게 수십만 원짜리 외부 교육을 들으라고 강제하고 있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 교육인지, 어떤 기관이 교육하는 것인지, 교육 대상자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지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 이를 공개하게 해달라는 심판을 청구했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인권센터가 학생들에게 수십만원의 돈을 내게 하는 외부 강의에 대한 내용을 비공개로 일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 글에는 “1년 전 이런 경험을 당했는데 너무 억울하다”“내 후배는 100만원이 넘는 교육을 부과받았다”“성 관련 사안이 아닌 다른 사안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 중 한 명인 A씨는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월 인권센터에게 40만원짜리 외부 강의를 강요당했다. ‘징계 대신 받는 처분이니 잘 따라야 한다’고 한 것은 분명 강요였다”고 말했다. A씨는 “친하게 지내던 여자 동기가 나와 싸운 뒤 평소 언행을 문제 삼아 성희롱으로 신고한 것도 개인적으로 억울하지만 40만원이라는 비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특정 강사에게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고 인권센터에 강요당한 게 더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인권센터로부터 유료 외부 강의를 강요당했다"는 글. [사진 스누라이프]

"서울대 인권센터로부터 유료 외부 강의를 강요당했다"는 글. [사진 스누라이프]

A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2016년 말 동기인 여학생에게 “성희롱적 언행이 있었다”고 신고당한 후, 인권센터의 조사를 받았다. 인권센터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인권 관련 교육 동영상을 보고 소감을 정리해 오는 등의 성희롱 예방 교육을 진행하며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징계를 권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 과정이 끝나가던 무렵 인권센터는 A씨에게 “상담소장이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추가 외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했다. 특정 강사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은 A씨는 당시 상담소장이던 B교수에게 “40만원은 큰 부담이 되는데, 인권센터 내부 교육이나 비용이 들지 않는 다른 교육을 받을 수는 없는지” 문의했다. 당시 B교수는 e메일 답장에서 “교육은 마음 편하라고 받는 게 아니다. 부담을 느끼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임을 지라고 받는 것이다. 이 일을 왜 비용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는지 약간 실망스럽다”고 적었다.

A씨는 연락처를 받은 강사에게 연락해 서울 종각역의 한 스터디룸에서 3회에 걸쳐 총 10시간짜리 강의를 들었다. A씨는 “사람 간의 갈등 상황에 대해 소개하는 일반적인 강의였다. 하지만 강의 도중 자신이 하는 모바일 게임에 관해 계속 얘기하는 등 전문성이 있는 강사인지 의심스러웠다”며 “약속한 강의 시간도 다 채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강사의 요구에 따라 강의료 40만원을 강사의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 당시 강사였던 김모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강의를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서 수업하는 프리랜서다. 개인적으로 진행한 수업에 대해서 내 개인 계좌로 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몇 명의 서울대생이 인권센터의 요청으로 이 강의를 들었나”는 질문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직도. [사진 서울대 인권센터 홈페이지]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직도. [사진 서울대 인권센터 홈페이지]

일부 서울대 학생과 졸업생들은 “서울대 내부 기관이 학생에게 특정 강사를 지목해 개인 계좌로 입금하는 강의를 들으라고 하는 것은 위법 행위다”“‘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벌금을 내라’고 하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등의 글을 스누라이프에 올렸다. 형사소송 전문 김범한 변호사는 “외부 강의를 들으라고 하는 과정에서 징계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면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한다. 판례상 서울대 직원을 공무원에 준하는 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만약 공무원으로 볼 수 있다면 ‘직권남용죄’에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인권센터는 29일 “가해자 교육은 행위자가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 자비 부담이 원칙이다. 조사·판단·권고를 수행하는 기관과 가해자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을 분리 운영해야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분야의 확립된 원칙이다”며 “인권센터는 기관의 신뢰를 훼손하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외부 유료 교육에 관해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권센터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답할 수 없게 돼 있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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